예수님의 승천을 ‘Ascension’이라 하고 성모님의 승천은 ‘Assumption’이라고 한다. 하늘로 불림을 받아 오르셨다는
교회의 믿음이다. 이런 설명은 어떨까 싶다. 외국에 갈 때
공항에서
‘VIP’들은 출국절차를 거치지 않고, 바로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다. 대통령, 국회의장, 유엔 사무총장 정도 되면 그렇게 출국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정도의 권한과 특혜는 인정해 주고 있다. 예수님의 모친이신 성모님께서도 죽음이라는 출국장을 거치지
않고, 하느님께로 가셨다고 생각하는 것은 초대교회의 믿음이었다.
세계역사는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위기를 맞는다. 러시아가
공산혁명을 일으키던 시기인 1917년에 성모님께서는 파티마에 발현하셔서 신자들에게 생활을 개선하며 티
없으신 성심을 공경하고 당신 성심께 전 인류와 교회를 봉헌하라고 당부하셨다. 그런데 교회는 오랫동안
성모님의 이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무심하게 지냈다. 그러다가
1950년 11월 1일 비오 12세 교황님께서 러시아와 전 세계를 성모님께 봉헌하시면서 특별한 신심과 존경을 드리고자 성모 승천을 믿을 교리로
반포하셨다. 교황님이 성모 승천 교리를 1950년 11월 1일에 반포하신 이유가 있다.
1950년은 우리나라에 6·25전쟁이 일어난 해다. 이
한국전쟁은 같은 민족끼리 싸우는 것만이 아니었다. 곧 북한에서는 중공군이, 남한에서는 유엔군이 가담했기 때문에 전쟁터만 한국 땅이었지 3차
세계대전이나 다름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5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또다시 비참한 전쟁이 일어나자, 교황님은
한국과 전 세계를 성모님께 의탁하시고자 성모 승천 교리를 선포하신 것이다. 놀랍게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에서 전쟁을 시작한 날이 바로 무염시태 (성모님의 원죄 없이 잉태) 대축일
12월 8일이었고, 전쟁에서 진 일본이 항복한
날도 성모 승천 대 축일인 8월 15일이다. 사실 성모 승천 교리는 교황님께서 새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교회가 다 믿어오던 바였다. 성모 승천에 관한 내용이 공식 기록에 남아있는 것은 제4차 칼케돈
공의회(451년)이다. 교황님은
이처럼 일찍부터 믿어오고 일부 지역에서 축일로 지내왔던 전통에 근거하여 성모 승천 교리를 믿을 교리로 반포한 것이다. 이는 감춰진 성모 마리아의 신비가 점차 드러난 것이다.
성모님은 ‘신앙의 여인’이셨다.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는 성모님의 굳센 믿음은 신앙인이라면 따라야할 믿음의 자세이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늘 ‘믿음’을 이야기 하셨다. 믿음이 있다면 산을 옮길 수도 있다고 하셨고, 믿음이 있다면 병도
치유될 수 있다고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백인대장의 믿음, 가나안
여인의 믿음, 하혈하던 여인의 믿음, 소경의 믿음을 칭찬하시며
그들의 소망을 이루어 주셨다. 성모님께서도 믿으셨기에 교회의 어머니가 되셨다. 성모님은 ‘사랑의 여인’이셨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아신 분은 성모님이셨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게 되기 때문이다. 성모님은 예수님께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이야기 하였고, 예수님께서는 성모님의 청을 들어주심으로 혼인잔치는 더욱 풍성해 질 수 있었다.
사랑이 많으신 성모님께서는 주리는 이들, 가난한 이들, 미천한
이들을 볼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도 사랑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새로운 계명을 주셨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들 모두 언젠가 하느님의 품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의 표징이다. 희망이 채워지고, 사랑이 채워지고,
믿음이 채워지는 것이 바로 영원함이다. 성모님의 승천은 끝도 없는 시간의 연장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 속에서 우리 모두는 사랑으로 채워 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성모님의 승천은 우리 신앙인이 가야할 미래를 보여주는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