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19 주일 김두진(바오로)신부님 강론

88일 연중 제 19 주일
복음 묵상

제사와 잔치의 차이는 제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제사 보다 젯밥에 더 신경을 쓰는 경향이
많고
,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은 빨리 끝나기 보다는 잔치의 음식을 먹고 마시며 친교를 이루려 기쁨으로
참여한다
. 미사는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라고 하지만, 거기엔
오해의 소지가 많다
. 제사를 지낼 때 상주 외에는 하는 일이 별로 없다. 나머지는 그저 구경꾼에 불과하다. 해서 많은 이들이 제사를 지낼
때 눈을 감고 제사가 끝나기 만을 기다린다
. 그래서 그런지 미사는 얼른 해 치우는 주일의 한 예식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 얼른 해 치우고 다른 것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미사는 제사의 성격도 있다고는 하나 제사하기보다는 잔치에 가깝다. 미사
특히 성찬례를 이르는 유크리스트
(Eucharist)
라는 말은 감사를 뜻하는 그리스어이다. 예수님께서 최후 만찬 때 성체성사를 제정하면서
하느님께 감사드리시고
, 당신 생명을 희생 제물로 바쳐 하느님께 드리는 그리스도인들의 최상의 감사 행위를
봉헌하셨기 때문이다
.

 

이런 성찬례에서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는 말씀은 그리스도 신앙인은 예수님의 몸이라는 빵, 곧 성찬으로
힘을 얻어 하느님을 만나고
, 하느님 자녀로 산다는 뜻이다.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라는
것은 이 빵을 먹으면 자동으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자기 삶의 중심으로 삼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생명을 산다고 말할 수 있기에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말씀은 예수님의 성찬에 참여하고
, 그분의 몸이라는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산다는
뜻이다
. 그러나 이 말은 현세에서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는 뜻은 아니다. 예수님의 몸인 빵을 먹어 예수님의 인간관계를 자기 것으로 하는 사람은, 죽음을
넘어 예수님이 하느님 안에 살아 계시듯
, 현재의 삶을 넘어서도 하느님 안에 영원히 산다는 뜻으로 알아들어야
한다
.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을 아끼고, 우리 자신을 중심으로
살고자 한다
. 그것을 위해 우리는 재물과 권력으로 우리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의 위상을 높이려고도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내 부모,
내 자식, 내 형제자매들이 어찌 소중하지 않겠는가? 어찌
팔이 안으로 굽지 밖으로 굽겠는가
? 그러나 팔이 너무 안으로 굽어 오그라지면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한다. 우리가 믿는 신앙은 자기 십자가를 가르치며 스스로를 학대하라고 하지 않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물을 모두 버리고
예수님만 따르기 위해 모이라고도 하지도 않는다
. 그러나 지나치게 자신만을 생각하는 삶은 건강한 삶이
아니라 오히려 독이 된다
.

 

우리가 복음을 읽고, 성찬에 참여하면서도, 우리 자신만 잘되도록 비는 마음이면, 정화수 떠놓고 빌면서 우리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빌던 미신과 다를 바 없다
. 우리를 중심으로,
우리의 편의만 생각하며 살면
, 우리 주변엔 늘 죽음의 그늘이 생긴다.
자연도 우리가 그것을 가꾸지 않고, 우리의 편의 위주로 대하면 생명이 살지 못하는 죽음의
공간으로 변한다
. 그 대가를 지금 코로나바이러스와 변형 바이러스로 혹독하게 치르고 있지 않는가? 우리가 계속 자연을 학대하고 내 편의 위주로 산다면, 우리가 후손들에게
물려줄 땅은 죽음의 땅이 될 것이다
. 그리스도 신앙인이 성찬에서 빵을 예수님의 몸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분의 삶이 보여준 그 사랑을 우리의 실천 안에 살아 있게 하자는 것이며
,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 는 말씀은 나 스스로가 이웃에게 생명을 주는지 이웃의 생명을 뺏는지 되돌아보라는
말씀이다
. 사랑은 생명을 잉태하고 낳는다. 생명을 잉태하는
이 사랑의 성사인 감사의 제사가 감사의 잔치로 변할 수 있도록 온 마음으로 참여해야 한다
. 거룩한 전례
중 하늘에서 내려온 이 빵을 먹음으로 힘을 얻어 하느님의 삶을 살아 내신 예수님을 닮는 것이 우리의 삶이어야 한다
. 그것이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