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5주 동안 성체성사의 중요성에 대해서
들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은 요한복음서 6장의 마지막
부분이다. 6장은 예수님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인 이야기로 시작하여 성찬의
의미를 여러 측면에서 조명하며 묵상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요한복음서가 기록될 당시에 다른 복음서들은
이미 집필되었고, 신앙공동체들은 성찬을 거행하고 있었다. 다른
복음서들은 수난 전에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이별의 만찬을 하셨고, 그것이 성찬의 기원이라고 하지만, 요한복음서는 성찬이 그냥 먹고 마시는 의식이 아니라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라는 말씀 (Do this in memory of me)을 통해 예수님의 삶을 기억하며 그 삶을 우리도 실천해야 한다고
한다. 사실 요한복음서는 성찬의 기원을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최후만찬에서 성찬의 이야기를 빼 버리고 예수님이 만찬의 식탁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이야기만 전한다. 세족례에 관한 이야기는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내용이다. 이어서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입을 빌려 말한다. “주인이요 선생인 내가 발을 씻었다면 그대들도 마땅히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13,14). 그러므로 성찬은 먹고 마시는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은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예수님과 같이 겸손하게 섬기는 종으로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요한 복음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으로 이렇게 전한다.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즉 성찬은 육의 일이 아니라는 말이고, 여기서 말하는 육은 자기 자신만 소중히 생각하는, 현세적이고 이기적인
삶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자기 한 몸 잘 먹고, 편하고,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에 충실한 삶을 의미한다. 성찬은
그런 삶을 위해 있지 않다는 말씀이다. 생명을 주는 영은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만 생각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자기 주변을 볼 줄 아는 하느님 자녀를 말한다. 요한복음서 서두에 이렇게 말한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4). 오늘 복음은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고 한다. 자기 자신만 생각하며 사는 육의 삶이 아니라, 하느님을 중심으로 한 영의 삶이 하느님의 생명을 준다는 뜻이다. 하느님은
생명을 아끼고, 고치고, 살리시기에 세상에 생명이 있고, 생명을 위한 헌신과 사랑이 있으며, 살신성인하여 실천하는 보살핌들이
있다. 그것이 오늘 복음이 말하는 영이 주는 생명이다. 그런
헌신과 사랑과 보살핌을 실천하는 삶을 살라는 말이다.
하나의 생명이 있게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헌신이 필요한가? 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햇빛과 수분이 공급되고 땅이 보존한 양분이 흘러 들어야 한다. 해서 대지에는 식물과 꽃이 있고, 여러 가지 생명이 태어난다. 부모의 사랑과 헌신이 있기에 생명은 태어나고 자라난다. 이처럼 영을
따라 사는 생명은 하느님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자기 스스로를 내어주고,
쏟아서 주변에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게 한다. 그것은 우리의 육의 일이 아니고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다. 그래서 요한복음서는 사람은 “위로부터
새로 나야 한다.”(3,3)고 말한다. 영의 삶은 우리 생명에서
자연스레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온다. 하느님과의
만남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며 예수님은 그 만남을 가장 강도 높게 또한 확실하게 하신 분이었다. 제자들
가운데 많은 육 적인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에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하면서 그분을 떠난다. 예수님께서
물으신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우리의 대답은 무엇일까?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잔치는 그래서 우리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모시고 그분의 일을 기억하며 그 삶을 살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Do this in memory of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