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의 이론은 부자도 가난한 이도 없는
평등한 세상을 지향한다. 다스리는 이도 다스림을 당하는 이도 없어 모두가 동무이다. 이론적으로는 그럴싸하지만 가진이들과 없는 이들이 공평하게 나누기 위해서 가진 자들의 것을 빼앗아 없는 이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이미 실패한 이론이 되어버렸다. 그에 비해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세상에서는 풍족하게
가진 사람들이 참 많다. 빈부의 격차로 정의를 부르짖기도 하지만, 쓰지
못하는 자산과 재물은 별 소용이 없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똑 같이 허덕이는 모양이다. 없는 이는 없어서 허덕이고 가진이는 아까워 허덕이고, 가짐과 못
가짐의 차이는 그래서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오프라 윈프리는 ‘오프라 윈프리 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흑인 여성이다. 그녀의 영향력은 ‘오프라 현상’이라
불릴 정도로 대단하다. 그녀가 추천하는 책은 항상 베스트셀러가 되고,
가난한 보육원을 돕고 싶다고 10초만 말하면 다음 날 수십억의 기부금이 들어온다. 타임지는 2005년 미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녀는 그녀의 쇼에서 상처받은 자아를 지닌
사람들을 자신의 상처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녀가 상처투성이의 삶을 살았던 경험이 있기에 쇼에 나온
게스트들은 자신들의 아픔을 털어놓게 된다. 윈프리는 빈민가의 딸로 가난한 흑인 사생아로 태어났다. 9살 때 사촌오빠에게 강간을 당해 14세 때 미혼모가 되었고, 마약 복용으로 수감되었던 전과자다. 그녀는 자신의 삶의 모델을 모세로
삼았다고 한다. 자신의 모든 과거는 미래를 위해 받은 ‘사명’이라고 말한다. 남보다 더 가졌다면 주어야 하는 사명이고, 남보다 아팠다면 고통이 아니라 남을 위한 사명이 되며, 남보다 부담되는
것이 있다면 짐이 아니라 이 또한 전해야 할 사명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고통까지도 나눌 수 있음을 사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여러분을 부유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독서의 말씀이다. 이는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아닐까 한다. “많이 거둔 이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이도 모자라지 않았다는 말씀의 실천이다. 나눔은 사랑의
행위이고 그 사랑의 행위는 가히 복음적이라 할 수 있다. 오늘 복음에서 “탈리타 꿈 소녀여 일어나라.”하시는 말씀이 소녀가 죽음에서 일어선
것처럼 우리 모두가 일어서는 말씀이었으면 한다. 사실 가진 것이 없어서 나눌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시간이 아까워, 재물이 아까워, 사랑이 아까워 나눌 수 없다면 풍족하지만 가련한 삶을 살아가는 처량한 신세가 될 것이다. 탈리타 꿈! 일어나 걸어라. 정의의
길을 걸어라, 죽음에서 깨어나 사랑의 길을 걸어라!
사랑은 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모범을 보여주셨고, 그 제자들도 그렇게 따랐다. 예수님께서 주신 용서하는 권한으로 용서하였으며, 천국의 열쇠로 천국
문을 열었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주실 때는 당연히 그것을 나누어 줄 것을 믿고 주시는 것이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삶은 자신을 풍요롭게 할 뿐만 아니라 세상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하느님께서 만물을 존재하라고 창조하셨으니, 세상의 피조물이 다 이롭고, 그 안에 파멸의 독이 없으며, 저승의 지배가 자상에는 미치지 못하며, 정의는 죽지 않는다.” 우리가 들은 지혜서의 말씀이다. 만물은 존재하라고 창조되었다고 말하며 그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이로운 것들이며 잘 사용하여 정의롭게 살아 죽음에
속한 사람이 되지 말라고 한다. 이는 부유하셨지만 가난하게 되신 그리스도를 본 받아 우리의 가진 것을
나누고 (꼭 재물만이 아니라) 우리의 시간 능력 그리고 재능을
나누어 참 부유를 살라 하신다.
공산당의 이론이 세상에 유토피아를 가져올
것처럼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공평한 분배가 사랑과 정의로 이루어져야지, 강압이나 힘에 의한 것이라면 이 또한 폭력이며 불의가 된다. 서로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는 중용의 자세가 우리 안에 실천된다면 우리 공동체는 살아있는 공동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복음의 공동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탈리타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