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를 중심으로 한 생각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중심으로 생각하며 살라는 말씀이다. 먼저 오늘 제2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우리에게 때가 왔음을 알린다. 바오로가 말하는 때는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주님 재림까지의
시간을 말하고 있다. 그러니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살고 슬픔이 있는 사람들은 슬픔이
없는 사람처럼 살고, 기쁜 일이 있는 사람들은 기쁜 일이 없는 사람처럼 살고… 바오로도 자신의 이런 강조가 오해 받을까 우려해서 우리가 보는 이 세상은 사라져가고 있으니 주님께 대한
희망은 현실의 고난을 견뎌낼 힘을 주고 현재 누리는 즐거움에 도취되지 않고 현실을 직시 하여 마지막처럼 하느님께 충직하게 하려는 뜻이라 설명한다.
복음에서도 때가 왔음을 알린다. 마르코 복음사가가
전하는 예수님의 때는 세례자 요한이 잡힌 뒤라고 말한다. 이는 마르코 복음사가가 우리에게 예수님의 삶
자체도 결국 요한처럼 갇히게 되고 죽임을 당하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얼핏 생각하면 이제 세상의 시간이
다되어 종말이 올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사실은 하느님의 나라의 도래가 왔음을 알리는 것, 즉 하느님께서
세상을 통치하시는 때가 오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 회개에 대해 강요하시는 것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맞춰 우리도 하느님께로 돌아갈 것 즉 회개할 것을 촉구하고 계신다. 회개는 그저 고백성사를 보고 성당에
몇 번 빠졌다는 죄를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을 고쳐 살라는 말씀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오늘 1독서에서 잘 나타나
있다. 회개를 촉구하는 요나의 말에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함으로 하느님은 벌을 내리려던 마음을 바꾸셨다. 하느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니느웨에는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어린이만
해도 십 이만 명이나 된다. 내가 어찌 이 큰 도시를 아끼지 않겠느냐?”
여기서 조심해서 알아들어야 말은 회개는 벌을 피하는 수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잘못된 삶에서
오는 결과가 벌이라고 이미 말씀드렸다. 회개는 잘못된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인데, 잘못된 삶의 방식을 벗어나는 것은 벌만 피하려는 소극적 자세가 아니라 오히려 기쁨을 살아내는 적극적 삶이 된다.
하느님이 전능하시다는 말은 그분이 우리를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하실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조폭 두목은 그 부하들 앞에 전능하다. 부하를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해줄 수 있다. 정치권력을 가진 사람은 자기와 코드가 맞는 사람을 등용하여, 그를
행복하게 할 수도 있고,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 세상
권력 구조의 상위에 있는 사람은 하위에 있는 사람에 대해 이렇게 전능하다. 그러나 하느님이 전능하다는
말은 전혀 그런 뜻이 아니다. 하느님은 선하고 자비로우신 분이시다. 전능하신
하느님이 창조하고 섭리하신다는 말은 당신의 선과 자비를 실천하신다는 뜻이다. 솔직히 말해 우리가 하느님을
외면하고도, 얼마든지 잘살 수 있다. 우리가 하느님을 외면하였다고
해서 하느님은 상처받고 복수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하느님을 외면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선과 자비를
외면하는 것이 된다. 선하신 하느님을 외면하면, 선과 악의
기준은 내 자신 되고, 내 마음에 드는 것은 선이 되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악이 되고 만다. 곧, 자비하신 하느님을 외면하면,
내가 이웃에게 자비로워야 할 이유가 사라지고, 강자 앞에 약하고 약자 앞에 강하면서 자기의
이득만 추구하는 볼품없는 인간이 되고 만다. 그래서 하느님을 제외하고 나면 나 스스로가 조폭 같은 사람들이
될 뿐이다.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는 말씀은 우리의 삶 안에 하느님이 살아 계시게 하라는 말씀이다. 하느님의 선하심과 자비가 우리 안에 살아있게 살도록 초대하는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