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7일
연중 제 26 주일 복음 묵상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수석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아들 둘 중에서는 하나는 포도원으로 일하러 가지 않겠다고 했다가 나중에 뉘우치고 포도원으로 일하러 간 아들과
포도원에 일하러 가겠다고 말하고 실천을 안 한 아들의 비유 이야기다. 즉 회개, 그리고 하느님 뜻 실천을 추구하시는 비유의 말씀이다. 사실 오늘의
예수님의 이 복음 선포는 거의 폭탄과 같은 말씀이셨다. 직업상의 죄인들인 세관들과 윤리상의 죄인들인
창녀들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고,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 그리고 대제관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은 거의 당대의 종교 상식을 송두리째 뒤엎는 폭탄과 같은 선언이었다.
사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오늘의 복음말씀을 포함해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 여러
번 언급했으며, 늘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을 명시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5,20)
“나에게 주님, 주님!’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7,2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18,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19,23)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의 복음 말씀이 하늘나라에 관한 소식인데 세례자 요한에 대한 믿음 즉 회개하는 것이 하늘나라를 들어가기 위한 조건이라 말씀하신다.
사실 오늘 복음의 말씀은 누가 하느님의 뜻을 실행 사람인가를 따지는 것이긴 해도 사실
세리나 창녀들이 하느님의 뜻을 실행한 사람이고 개과천선했는지에 대해서도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은 회개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들었다는 것이다. 제
2독서에서 들은 사도 바오로의 권고와 예수님에 대한 찬가와 복음 다른 곳에서 읽었던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된다는 말씀이 겹쳐지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사실 첫째가 꼴찌가 될 때 그 꼴찌가 첫째가 되는 것이지 그냥 꼴찌가 저절로 첫째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 제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원래
첫째였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비참과 굴욕으로 꼴찌가 되셨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들어 높여 주심으로 다시 첫째가 되셨다)
우리도 이미 하느님의 자녀가 됨으로 첫째가 되어있지만,
우리가 겸손으로 우리 자신을 낮추어 자기 십자가를 짐으로 꼴찌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될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들어 높여 주심으로 첫째가 된다는 의미다. 사실 이 말씀은 어디서나 통용된다. 가정에서도 ‘엄지 척’ 으뜸이
되려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이어야 한다, 또 이 세상에서도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직업상 죄인들인 세리들이 환영 받는 나라, 윤리상
죄인들인 창녀가 환영 받는 나라가 하늘나라라는 이 말씀은 오늘날에도 폭탄과 같은 선언임에는 분명한데 우리는 어디에 속한 사람들일까? 분명한 것은 오늘 들을 복음 말씀으로 비추어 볼 때 선한 사람 아흔 아홉 보다 회개하는 죄인하나가 하늘나라를
기쁘게 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우리의 신앙 생활 안에서도 서로 섬김을 통해 ‘엄지척’ 으뜸이 되는 사람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