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31 주일 사목편지

시월이 지나 십일월에 들어섭니다. 이제는
낙엽도 많이 떨어지고, 겨울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11 1일은 주일로 모든 성인 대 축일로 지내고 2일은 월요일이지만 모든
위령의 날로 돌아가신 모든 분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이번 위령의 달에는 특별히 돌아가신 분들을 미사
중에 기억하겠습니다. 올해는 여러분들과 하는 위령 9일 기도를
함께 할 수 없어 매우 안타깝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불타는 떨기나무 속에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탈출 3,2.6.15.16)라고 하십니다. 분명 죽은 믿음의 조상들의 이름을 부르시며 그들의 하느님이시라 하십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죽은 후에 만나는 분이기에 그러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눈으로는 죽은 이들이지만, 오히려 하느님 앞에서는 모두가 살아있기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이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는 것이다.” (루카
20,38)”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위령 성월에 우리가 돌아가신 분들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의
희망인 동시에 우리의 신앙이기에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생명이신 분이시기 때문에 언제나 살아 계시고, 우리를 살게 해주십니다. 신앙에 충실하였던 성인들은
세상의 가치나 세상의 통념대로 살지 않고, 우리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알게 된 하느님의 질서를 살았던
분들이셨습니다. 우리의 선조들이 비록 하느님을 모르고 사신 분도 계시겠지만, 그들은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베품, 자비, 사랑, 용서 등을 실천하며 사신 분들이셨습니다. 위령 성월에 이름 없는 성인들 즉 우리의 조상들도 그분들이 겪었던 아픔, 그분들이
흘린 눈물은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어리석음이었고, 세상이 가르친 지혜를 넘어선 새로운 삶의
모습이었으며, 하느님의 생명이 하시는 일을 역사 안에 실천하며 산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습니다‘모든 성인의 통공’이라는 말은 다음과 같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가지 의미를 지니는데 ‘거룩한 것들의 공유’와 ‘거룩한 사람들 사이의 친교’가 그것입니다. 모든 성도의 친교가 바로 교회입니다모든 신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몸을 이루기에 각자의 선은 모두에게 전달됩니다이렇게 교회 안에는 선의 공유가 존재합니다무엇보다 그리스도의 모든 선이 지체들에게 전달되며이러한 전달은 교회의 성사들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또한 우리의 수호 성인이나 좋아하는 성인들
뿐 아니라, 이미 하느님 곁에 있다고 믿는, 이 세상을 떠난
가족들에게 우리를 위한 기도를 청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현세의 죽음의 문화를 사랑과 생명의 문화로 변화시키는 시대적 사명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희망과 사랑만이 인간다운 삶의 질서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과 신앙의
선조들, 그리고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 우리 눈에는 이 세상을 떠났지만,
하느님 나라에
살아 계신 은 모든
이들이 우리를 위해
빌어 주실 것입니다.

서로의 통공 안에서 평안 하시고 건강하시길 빕니다.

김 두진 바오로 신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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