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어떤 사람이 길을 떠나면서 자기의 종들에게 재산을 맡긴 이야기다. 탈란트는 그 시대 화폐 단위 중 가장 큰 것이었다. 한 데라리온은
당시에 농촌 하루 품삯이었다. 그리고 육천 데나리온이 한 탈란트였으니,
다섯 탈란트는 먹지 않고 입지 않고 쓰지 않고 30,000일을 일해야 하는 거액이었다. 오늘의 이야기는 하느님으로부터 우리가 받은 것을 값지게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주인은 종들과 셈을 하지만, 종에게 나눠 주었던 재산과 그 종이
벌어들인 것을 회수하지 않는다. 그 주인은 자기의 재산을 늘리기 위해 종들에게 돈을 맡긴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주인은 종들이 은혜롭게 받은 것을 내어주고 쏟아서 활용해 줄 것을 바랐기에 주인은 값지게 활용한
종을 축복하고, 자기 자신의 미래만 생각하며, 받은 것을
땅 속에 묻어두었던 종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비난과
더불어 받았던 것마저 빼앗긴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인간은 그의 육체적, 정신적
생명의 발전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은 없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人間이라 하지 않던가? 한자어는 서로 지탱해주어야 인간이라는
뜻이다. 서로 지탱해주지 않으면 인간은 제대로 설 수 없다. 마찬가지로
‘탈렌트’(재능)는
똑같이 분배되지 않는다. 이러한 차이들은 하느님의 계획에 따른 것으로,
하느님께서는 저마다 필요한 것을 남에게서 받기를 바라시고, 특별한 ‘탈렌트’를 가진 사람들이 그 혜택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를
바라신다. 인간들 사이의 차이는 사람들에게 아량과 친절과 나눔을 권장할 뿐 아니라 종종 그러한 의무를
부과한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왜 유독 한 탈렌트를 가졌던 종만 책망을 받고 가진 것마저 빼앗겨야
했는지 이해가 된다. 마태오는 선물이 각자의 능력에 따라 주어졌다는 것을 강조한다. 얼마 받지 못한 것처럼 느껴지는 한 탤런트는 실제로 6000데나리온이라는
엄청나게 큰 금액을 받은 것이었다. 쉬는 날 없이 하나도 안 쓰고
16년하고도 반년을 일해야 벌 수 있는 큰돈이다. 실제로 종들은 각자 자신이 받은 금액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었다. 결론적으로 모두에게 차고, 넘치게
주어졌다는 이야기다. 주인은 종들을 믿기 때문에 이러한 엄청난 금액을 맡길 수 있었다. 단순히 자신의 종이 아니라 그만큼의 신뢰와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종은 이 주인의 신뢰를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는 모진 분’으로 바라보며, 많은 것을 받았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늘 복음의 탈란트 이야기는 주어진 것을 가지고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말한다. 주인이 베풀었듯이, 받은 사람도 베풀어서 값지게 활용하라는 이야기이다. 베풂이라는 말이 우리 생활 안에서 없어지면, 우리의 생명, 재산, 지위, 자격증, 이런 것이 모두 우리 자신만을 위한 것으로 보이게 된다. 신앙은
하느님의 빛을 받아들여 우리의 삶을 보자는 삶의 운동이다. 자기만, 혹은
자기가 가진 것만, 소중히 생각하는 데에서 한 발 물러서면, 하느님의
빛이 다가온다. 신앙은 하느님께 빌고, 바쳐서, 우리의 욕심을 이루려는 것이 아니고, 베풀고 축복하시는 하느님의
일을 연장하여 우리도 이웃을 보살피고 축복하며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운동이다. 하느님께서 주신 재능을
하느님이 두려워 밭에 묻어두고 썩히면 그 재능은 줄어들고 결국 못쓰게 된다. 내가 가진 재능을 위해서라도
하느님께서 주신 재능으로 이웃을 위해 또 사회를 위해 봉사 한다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지혜로운 종일 것이다.
우리가 받은 재능을 결코 땅에 묻어서는 안된다. 하느님께서 주신 재능으로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