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4일 연중 제 27 주일 Fr. 김두진(바오로)강론

10월 4일 연중 제27주일

매주 주말 아침, 스마트폰 화면에 어김없이 뜨는 ‘주간 스크린 타임 리포트’를 볼 때마다 흠칫 놀란다. “지난주 하루 평균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7시간 30분입니다.” 이 명백하고 객관적인 데이터는 뼈 때리는 아주 불쾌하고 ‘불편한 진실’이다. 다이어트를 결심한 다음 날 아침, 체중계 위에 올라섰을 때 마주하는 냉혹한 숫자도 마찬가지다. 진실은 종종 우리의 환상을 깨고 마음을 몹시 불편하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스크린 타임 알림 기능을 아예 꺼버리거나, 체중계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 둔다. 내 눈앞에서 그 불편한 존재들을 치워버림으로써 속 편히 지내려는 꼼수다.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비유 속 포도밭 소작인들이 한 짓이 정확히 이와 같다. 포도밭 주인은 정당한 소출을 받기 위해 종들을 보낸다. 하지만 소작인들에게 이 종들은 내 주머니에 들어올 수익을 빼앗아 가는 이들이라 착각해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대신, 진실을 전하러 온 메신저를 없애는 쪽을 택한다.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쳐 죽였다. 참다못한 주인이 이번에는 아들을 보낸다. 고대 이스라엘의 법 관행상, 상속자가 없는 지주가 죽으면 그 땅은 먼저 점유하고 있는 사람의 차지가 될 수 있었다. 해서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그래서 결국 아들마저 죽여 버린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모두 ‘포도밭’이라는 비유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제1독서인 이사야서에서 하느님은 돌을 일구고, 좋은 포도나무를 심고, 한가운데에 망대까지 세우며 결실을 위한 완벽한 인프라를 구축해 주셨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포도밭에 그토록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주셨으니, 하느님께서 백성들에게 당연히 돌려받기를 바라셨던 ‘기대치’가 있었다. 이를 이사야 예언자는 아주 명확하게 짚어내는데, 바로 ‘공정과 정의’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형제자매에 대한 사랑과 나눔을 통해 당신에 대한 충실성을 증명하기를 바라셨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수확된 것은 좋은 포도가 아니라, 쓸모없는 들포도였다. 공정을 기대하셨는데 억압과 유혈 사태가 벌어졌고, 정의를 기대하셨는데 약자들의 아우성만 터져 나온 것이다. 소작인들은 밭을 가꾸라고 주신 권력을 쥐고 엉뚱하게 이웃을 착취하며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고 있었다.

소작인들이 주인의 아들을 잡아 포도원 밖으로 끌어내어 죽여 버린 사건은 단순히 비유로 끝나지 않는다. 이것은 훗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골고타 언덕에서 십자가형을 받고 돌아가실 것을 정확히 예고한 슬픈 진실이다. 소작인들은 아들을 죽이면 모든 것이 자기들의 뜻대로 끝날 줄 알았지만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인간의 잔머리나 꼼수에 중단되는 법이 없다. 예수님은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에게 “주인이 돌아오면 그 악한 자들을 어떻게 하겠느냐?”하고 물으신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주님은 시편의 말씀을 인용해 하느님의 통쾌한 반전을 선언하신다.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건축가들(당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쓸모없다며 내다 버린 그 돌(그리스도)을, 하느님은 인류를 구원할 새로운 건물의 가장 중요한 ‘머릿돌’로 삼으셨다.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처참한 실패가 부활의 승리로 ‘누구나 우러러보는 가장 위대한 상징이자 기준점’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결국 회개할 능력을 상실해 버린 옛 백성들은 하느님 나라의 주도권을 잃고, 풍성한 결실을 맺을 준비가 된 ‘새로운 백성’이 그 포도밭을 물려받게 된다.

그렇다면 새로운 포도밭의 소작인으로 초대받은 우리는 지금 하느님께 어떤 ‘도조’를 내야 할까?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바쳐야 할 도조를 이렇게 밝힌다. 걱정하지 말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곧 그분과 깊은 관계 안에 머무르는 것 자체가 하느님께 바치는 가장 직접적이고 향기로운 소출이다. 그리고 참되고 고귀하며 의롭고 정결한 실천, “의로운 것과 정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 또 칭송받는 것은 무엇이든지 마음에 간직하십시오.”내 삶 안에서 온갖 덕과 선을 간직하고 이웃에게 나누는 행동은 형제자매를 이롭게 하는 동시에, 하느님 창고에 쌓이는 가장 확실한 수익이 된다.

우리는 종종  “내 돈 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 것)의 함정에 빠진다. 내가 가진 건강, 내가 쌓은 지식, 내 통장의 재물, 심지어 나의 매력적인 외모나 성격마저도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착각한다. “내 인생 내 멋대로 살고, 내 돈 내 마음대로 쓰는데 누가 뭐라고 해?”라는 오만방자함이 싹트는 순간, 우리는 이웃을 위해 단 1원도, 단 1분도 쓰지 않으려는 악독한 소작인으로 변해버린다. 하지만 나의 존재 자체부터가 하느님으로 부터 은총(공짜)로 받은 것이다. 나를 지켜주시고, 수많은 은총으로 감싸주신 주님은 훗날 우리에게 이렇게 물으실 것이다. “내가 내 포도밭인 너를 위해 무엇을 더해 주어야 했더란 말이냐?”

생명을 주신 그분의 크신 뜻을 헤아리며, 이제는 제때 밀리지 않고 도조를 내는 깨어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도움을 필요로 하며 머뭇거리며 손을 내미는 이웃, 솔직히 너무 귀찮아서 모른 척 지나쳐 버리고 싶은 사람, 성격이 지독히도 맞지 않는데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하는 이웃들과 가족들. 놀랍게도 그들이 바로 하느님이 우리에게 도조를 받으러 보내신 ‘수금원’일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짜증과 외면이라는 돌을 던지는 대신, 사랑과 인내라는 따뜻한 소출을 내어주어야 할 때가 지금이다. 지금 당신의 삶이라는 포도밭을 찾아와 문을 두드리고 있는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수금원’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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