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8일 연중 제 29주일 (전교주일)
얼마 전 뉴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얼굴과 서명이 들어간 ‘250달러짜리 지폐’ 시안을 만들라고 조폐국에 지시했다는 뉴스를 보고 헛웃음 친 적이 있다. 1866년 이후 살아있는 사람 얼굴은 지폐에 못 넣는다는 160년 넘은 미국 연방법도 무시하고, 우려를 표한 조폐국장을 딴 데로 보내버리면서까지 추진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권력이란 게 참 무섭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참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종이 돈 한 장에 자기 얼굴을 박아서 영원히 기억되고 싶은 인간의 그 지독한 ‘자기애’와 ‘세속적 욕망’이 그것이다. 그런데 2천 년 전 예수님 시대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당시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는 은화 ‘데나리온’에 자기 얼굴과 함께 이런 글귀를 새겨 넣었다. “지존한 신의 지존한 아들, 티베리우스 황제.”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이 동전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로마의 막강한 권력과 우상숭배의 결정체였다. 하느님 외에는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던 유다인들에게 이 동전은 보기만 해도 속이 뒤집히는 혐오 물품이기도 했다.
3주전에는 포도밭에 일하러 간다고 하고 안 한 아들이 옳으냐 아니면 안 간다고 하고서 가서 일한 아들이 옳으냐는 질문으로 하느님의 일을 말로 하는 지도자들에게 일침을 가하시더니, 너희들 보다 직업상 죄인인 세리들과 윤리적 죄인인 창녀들이 먼저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 다음에는 포도밭의 소작인들을 비유하시면서 도조를 내는 소작인과 도조를 안 내고 상속자를 죽여 오히려 포도밭을 차지하려는 그들의 욕심을 지적하시며 너희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다는 말씀으로 그들의 행동을 비난하셨다. 또한 지난 주 복음에서는 잔치를 벌려 놓고 모두 초대했음에도 거기에 응하지 않고 다른 짓을 일삼는 그들을 빗대어 호통 치셨으며 어쩌다 잔치에 초대를 응했음에도 예복을 입지 않아 또 쫓겨나는 모욕을 당하는 사람의 비유를 들어 그들을 욕하셨으니 이제 그들도 참을 만큼 참았다 싶다. 이제 그들은 “어떻게 하면 말로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울까 의논하고”예수님을 옭아 맬 충분한 질문거리 하나를 만들어 왔다.
물기 전에 꼬리치는 강아지 마냥 칭찬해 놓고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께서 진실하시고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지 않으시는 줄 압니다. 과연 스승님은 사람을 그 신분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더니 “스승님, 황제에게 주민세를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참 기가 막힌 외통수 질문이다. “바치라”고 하면 로마에 아부하는 민족 배반자가 되고, “바치지 말라”고 하면 로마법을 어긴 반역자로 국사범 고발을 당할 판이었다. 그분은 한 판의 통쾌한 반전으로 그들의 속물근성을 뒤집어 놓으신다. “세금 내는 돈을 내게 보여라.”하시고는 “이 초상과 글자가 누구의 것이냐?”물으신다. “황제의 것입니다.”하자 “그러면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
이 말씀의 진정한 묘미를 이해 하셨는가? 예수님은 지금 “세금은 세금대로 내고, 신앙생활은 신앙생활대로 하라”는 식의 적당한 타협을 말씀하신 게 아니다. 너희가 호주머니에 황제 얼굴이 그려진 데나리온을 지니고 다니며 그 돈의 편리함을 누리고 있다면, 그 은화는 원래 황제 거니까 그냥 황제한테 줘 버리고 그 다음의 질문은 너희 자신은 누구의 것이냐?”라고 묻고 계신 것이다. 동전에는 황제의 형상이 새겨져 있어 황제의 것이지만, 우리 인간의 영혼 속에는 하느님의 형상(Imago Dei)이 새겨져 있으니 동전 몇 푼은 황제에게 줄지언정,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우리 자신 곧 우리 마음과 정신과 삶 전체는 온전히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한다는 선언이다.
예수님은 복잡한 율법 조항이나 계산기 두드리는 똑똑함으로 세상을 상대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을 움직인 것은 오직 하느님을 향한 뿜어져 나오는 ‘열정(Passion)’이었다. 그분의 열정은 언제나 소외되고 그늘진 곳으로 향했다. 당대 지도자들은 율법을 못 지킨다고 세리, 창녀, 병자들을 ‘죄인’이라며 밖으로 내던졌지만, 예수님은 율법과 제사의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던 그들에게 다가가셨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도 바로 이 열정 때문이었다. 영어로 고난을 뜻하는 ‘Passion’이 곧 ‘열정’을 뜻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하시는 데 당신 목숨을 다할 만큼 ‘열정적’이셨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손에 쥐어진 것은 무엇인가? 혹시 지폐 위에 자기 얼굴을 넣으려고 애쓰던 세상 권력자들처럼, 내 이름, 내 체면, 내 통장 잔고라는 ‘세상의 형상’을 매만지며 골머리를 앓고 있지는 않는가? 세상의 것은 세상으로 흘러가게 하고, 하느님의 형상으로 찍혀 나온 여러분 자신을 하느님께 기꺼이 돌려드려야 한다. 몸과 마음과 생각과 힘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고, 내 곁의 소외된 이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삶, 그것이야말로 2천 년 전 데나리온의 덫을 단칼에 깨부수셨던 예수님의 거룩한 열정에 응답하는 길이다.
비록 우리 곁은 아니지만, 지구 반대편에 떨어져 있는 가난한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자 하려는 선교 바자회는 그래서 복음 선포의 훌륭한 장이다. 우리가 직접 가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지만,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우리의 하느님의 마음이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오늘 선교바자회를 위해 몇 주 전부터 마음고생과 몸으로 일해 주신 선교부, 모니카회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가서 복음을 선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