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십자가의 무게
벌써 부활 제 5주일입니다. 변덕스러운 날씨에서 봄을 재촉하는 봄비 와 푸르게 돋아나는 싹들을 보며 봄의 기운을 느낍니다. 죽은 듯 고요 하던 잿빛의 침묵에서 깨어나는 생명의 푸르름을 보며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놀라운 신앙의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새로운 계명을 선포하십니다. "서로 사랑 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말로는 쉽지만,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사랑은 타인의 행복을 원함’ 이라고 간단히 정의한 바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내 뜻을 이루어내는 고집이 아니라 네 뜻을 이루어 내는 배려요, 따뜻함입니다. 내 만족을 찾는 욕망이 아니라 위타적(爲他的)이며 몰아적인 내어줌입니다. “아버지!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소서." (Mt. 26:39)
한국에서 올림픽을 할 때 유행하던 노래가 있었습니다. 아 대한민국 이라는 노래였는데, 아침 출근길에 동네에 설치되어있던 스피커로 늘 듣던 노래였고 라디오에서도 자주 흘러나오던 노래였습니다. "하늘엔 조각구름 떠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고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가 후렴 부분에서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 은혜로운 이 땅을 위해 이렇게 우린 이 강산을 노래 부르네." 하는 이 노랫말은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아름다운 강산에 살고 있음을 기뻐하는 노래입니다. 물론 노랫말을 작사하신 분이 이런 뜻으로, 또 부르신 가수가 이런 마음으로 노래하신 것이 아닐지 몰라도,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은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의 사랑의 정의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내 만족이 채워지고 내 뜻대로 이루어지는 그런 곳은 분명 아닙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로마 14:17)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예수님의 삶은 "죽기까지 사랑"하신 삶이셨습니다. 힘 있는 이들과 타협하거나 불의에 굴복하지 않으시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는 사랑이었습니다. 반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사랑의오류가 많습니다. 나의 만족이 너의 기쁨이 되도록 한다면 그것은 폭력입니다. 나의 기쁨이 너의 만족이 되도록 한다면 그것은 독재입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나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횡포요, 독선이며 사랑을 가장한 욕망입니다. 세상이 폭력과 테러로 시끄러운 이유도 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하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얻을 수 있고 뜻하는 바는 이룰 수 있다는 자기중심적 세상이기 때문은 아닐까요?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한다” (마태오 16:24)
오늘 제 1독서에서 바오로는 첫 선교 여행을 마치고서 안티오키아로 돌아옵니다. 안티오키아 공동체에서 바오로는 당시 그리스를 복음의 빛으로 비추기 위해 교회로부터 파견 받은 바 있습니다.
사도바오로는 특히 자기가 세운 공동체들로 하여금 박해와 맞서도록 하고 그 교회들을 활성화하기 위해 ‘원로들’을 뽑아 세우는데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교회 안에서 사도들이 맡은 임무는 신자 공동체로 하여금 자기 속에 갇혀 있지 않고 다른 모든 공동체들과 함께 호흡하고 공동보조를 맞추며, 모든 사람에게 열린 자세로 동분서주 하면서 온 몸과 목숨까지 바치는 충실한 ‘종’이 되도록 하는데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긴밀하게 맺어져 하나로 뭉친 공동체들은 세상과 역사 한가운데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 (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을 전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어 하느님의 자녀들을 모아들이는 본연의 사명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들은 제 2독서인 묵시록은 변화한 인류가 자기를 만들어낸 창조주와 더불어 올리는 결정적인 결혼식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그 날에 본모습을 완전히 드러낸 신랑(하느님)께서 올바른 사람들의 얼굴에서 눈물과 슬픔을 말끔히 씻어 주실 것입니다. 그 날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사랑하신 사람들과 함께 계시면서 죽음과 슬픔의 고통을 없애 주실 것입니다. 그 날 인류는 영원한 젊음으로 빛날 것이며 더 이상 늙지 않을 것입니다. 그 날 악령을 상징하는 지옥의 용이 있다는 바다가 이집트 탈출 때처럼 하느님 백성들 앞에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당신의 마지막 의지를 밝히십니다. 모세가 하느님과 맺은 계약에서 십계명을 받은 것처럼, 새로운 계약에서는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내리십니다. 사랑하라는 것이 새로운 계약의 골자입니다. 사랑하라는 그 계명의 내용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 구절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특징이라 합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13,35)
복음은 늘 우리게 도전을 가져다줍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정체성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을 알리는 말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고 사는가에 따라 우리는 그분의 제자가 되고 그분을 배척하는 사람이 된다는 뜻도 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는가에 따라 제 2독서의 묵시록의 새 하늘, 새 땅이 열리는 그 순간에 우리는 "통곡하며 이를 가는" 사람이 될지 아니면 "새 하늘, 새 땅에 하느님과 함께 살게 될지" 가름되어질 것입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는 지난주의 복음 말씀처럼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알아듣고 그분을 따르는 삶은 분명 이 세상 안에서 커다란 도전으로 다가오지만,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삶임에는 분명합니다. 사랑은 말로는 쉽지만 행동으로는 쉽지 않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예수님의 제자로 알아보는 것, 이 모두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십자가의 무게가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사랑의 십자가의 무게를 느끼십니까? 서로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 김 두진(바오로)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