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르다!
목마름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사랑에 목마른 사람, 관심에 목마른 사람, 칭찬에 목마른 사람 등등 우리게 목마르다고 외치는 이들은
가깝게는 우리 가정에, 우리의 이웃 안에 있습니다. 목을 축여줄 누구 거기 없소?
오늘 예수님께서 한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시며 당신이 누구신지 스스로 밝히십니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4,7)
라는 표현은 마치 십자가 위에서 “목마르다”(요한 19,28)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연상케 합니다.
사실 사마리아 사람과 유다인들은 서로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유다 사람이시면서 사마리아 여자인 제에게 마실 물을 청하십니까?" (4,9) 복음에서 보는 것처럼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수백 년 동안 원수처럼 지냈습니다. 솔로몬 왕이 죽은 후 이스라엘 민족은 남북으로 분열되어서 남쪽에는 유다 왕국이 섰고 북쪽에는 이스라엘 왕국이 세워지게 됩니다. 그리고 남 유다의 수도는 예루살렘이었고, 북 이스라엘의 수도는 사마리아였습니다. 이렇게 서로 반목하면서 살다가 기원전 722년, 북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이유야 복잡하지만 유배시기에 사마리아에 남아 있던 자들이 이방인과 혼인을 하여 ‘아브라함의 순수한 피를 오염시켰다.’하여 유대인들이 그들을 무시하고 같은 동족으로 치지도 않았습니다. 또 기원전 128년 경 요한 흐르카노스의 명령에 따라 유다인들이 사마리아의 수도 시켐을 점령하고 그리짐 산 성전을 파괴하고부터는 긴장이 더욱 고조되었고, 예수님 시대에는 마찰이나 불화가 잦았고 혈투까지 벌어지곤 했습니다.
이런 복잡한 상황이라 그랬을까요?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의 시작은 순탄치 않습니다. 물, 곧 생명수를 주제로 한 첫 대화에서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의 말씀에는 세 가지 큰 뜻이 숨겨져 있습니다.
첫 번째로 예수님의 자기계시입니다. 사실 오늘 복음의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당신이 누구신지 스스로 밝히십니다.(자기계시) 예수님의 정체를 알게 되는 단계적 발전과정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나타납니다. 유다인(9),→주님(11),→우리 조상 야곱보다 더 위대하신 분(12),→예언자(19),→그리스도(25,29),→세상의 구원자(42). 이렇게 순서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 한 것은 믿음은 어떤 표징을 보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스스로 밝히시는 당신의 정체(자기계시 말씀)에 대한 응답이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메시아로 여인에게 계시함으로써 대화는 절정에 이르면서 중단 됩니다.(26) 이어서 먹을 것을 사러 나간 제자들이 등장하며, 여인은 물동이를 샘가에 둔 채 마을로 내려가서 자기가 만난 예수님을 마침내 "세상의 구원자"로 이웃에게 고백합니다.
“제가 한 일을 모두 알아맞힌 사람이 있습니다. 와서 보십시오.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니실까요?”(29) 여인의 이 표현은 질문의 형태로 돼 있지만 ‘그분은 그리스도이시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이러한 여인의 행동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을 찾아가 자신들과 함께 머물러 달라고 청하고 예수님은 거기서 이틀을 함께 머물렀다고 복음은 전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마지막은 고을 사람들의 신앙고백으로 끝납니다. “우리가 직접 듣고 이분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원이심을 알게 되었소.”(요한 4,42). 오늘의 복음 말씀은 마치 영화를 보는 듯 생생하게 예수님에 대해 전하고 있습니다. 기실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이유가 다양한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표징이나 기적을 체험하거나 보았기 때문은 아닐 겁니다. 오히려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를 알고 싶고, 그 삶을 배우고 싶어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신앙의 언어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의 삶으로 부르셨고 그 부르심에 응답한 것이라 고백합니다.
두 번째로 진실한 예배입니다. 여인이 말하는, 자신의 조상들이 예배를 드린 ‘이 산’은 바로 사마리아의 성소가 있던 그리짐 산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진실한 예배는 그리짐 산이든, 예루살렘이든 장소에 연연하지 않고 “영과 진리” 안에서 드리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23) 지금이 바로 그 때이며 하느님은 영이시므로 예배를 드리는 이들은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하십니다. 즉, 더 이상 하느님은 성소 한곳에 머물러 계시는 분이 아니라, 진리가 있는 곳에 함께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요한복음 안에서 진리는 예수님의 활동을 통한 계시와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을 경배하는 것이 진실한 예배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증언입니다. 우리는 모두 증거자 입니다. 매 미사 때마다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는 교회의 명령을 듣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증언하고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는 요한복음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이야기로, 다른 복음서와 비교해서 “증언”을 강조합니다. 처음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던 여인이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그를 예언자로 생각하고(요한 4,19) 마침내 그를 메시아로 받아들입니다. 또한, 이 여인은 자신의 믿음을 고을 사람들에게 가서 증언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 여인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결국 그를 세상의 구원자로, 그리스도로 받아들입니다.
오늘 복음은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를 통해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게 합니다. 표징이 아닌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로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목마른 사람들에게 생명수를 전하는 것이라 오늘 복음은 말하고 있습니다. 사순시기가 거룩한 시기라 말하는 것처럼 목 말라 하는 이웃에게 생명수를 전하는 것은 거룩한 증인이 된다고 오늘 복음은 외치고 있습니다. 목마르다고 외치는 이들이 의외로 우리 주변에 많지 않습니까?
– 김 두진(바오로)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