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음으로 이루어집니다.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잘 한다, 잘 한다 하면 신기하게도 잘 하는데, 못 한다, 못 한다 하면 신기하게도 진짜 못합니다. 말에는 사람을 변하게 하는 능력도 있습니다. 주례자가 “이로서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음을 선포합니다!”라는 말로 부부가 되어 평생을 살아가는 동반자가 된다는 것, 부제나 사제가 될 때 주교님의 선포로 이제 사제가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신비스러우리만치 힘이 있는 말씀이 됩니다.
성서의 말씀이 누구에게 이루어질까요? 예수님께서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라고 하셨듯이 "듣는 이에게" 이루어집니다. 듣지 않으면 아무리 나에 관한 말이라 하더라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오늘 이 성서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듣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면 지나친 해석일까요? 듣는다는 것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들어 그 뜻을 따르는 순명을 말합니다. 우리가 복음 말씀대로 순명을 하는데 이루어지지 않을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 나에게 말씀하시는 말씀을 듣고 이룰 때 그 말씀이 나에겐 기쁜 소식이 되고 그 복음이 모든 억압에서 나를 해방시키는 일이라는 것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주님의 은혜로운 해(루카 4,19)를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이 "늘 하시던 대로"라고 하신 것처럼 늘 우리들이 성서를 읽고 묵상하는 것이 "늘 하던 대로"처럼 생활화 될 때에 맺어지는 열매일 것입니다. 오늘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주님께서 오늘 나를 통해서 이루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오늘은 주님의 말씀을 이루는 날이어야 합니다. 늘 우리의 오늘은 주님께서 나를 위해 말씀해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나를 완성시켜 나가는 날이면 좋겠습니다.
오늘 제1독서인 느헤미야기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합니다. 느헤미야기를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거룩한 예루살렘 성전의 굳건한 성벽과 구원의 성문은 외세의 침범으로 무너지고 불 타버렸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묶여 바빌론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고, 남은 사람들은 불행과 수치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에 느헤미야는 뉘우쳐 기도를 바친 뒤 무너진 성벽을 다시 보수할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깁니다. 외적인 성벽 보수만이 아니라, 유다 동포 가운데 약자들의 억울함과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율법)과 제사 예식’이라는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고자 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속화와 물질주의 등으로 교회 안에서도 거룩함과 구원과 은총이라는 성벽과 성문이 많이 훼손된 적이 있었습니다. 일부 신자들은 자기의 뜻만 고집하고 성경에 나오는 글에만 충실해서 성경의 참 뜻은 외면한 채 기복적 신앙으로 세속과 미신의 경향으로 알지 못하는 믿음 속으로 유배를 떠나고, 그 나마 남은 신자들은 폐허가 된 곳에서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은 헷갈림 속에서 말씀과 은총에 굶주리기도 하였습니다. 이에 느헤미야는 힘주어 말합니다.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쁨이 바로 여러분의 힘입니다.”(느헤미야서 8,10)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쁨’이란 무엇입니까?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 주님께서 맺어주신 은총과 구원의 약속이 그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다는 이 말씀이 우리에게 매우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바로 여기서 말하는 가난한 사람 (Anawim 아나윔)은 물질적인 가난을 포함해서 정신, 심리적 가난까지도 말하는 것으로 어떤 뜻으로든 불행하게 된 소외된 자들을 말합니다. 앞서 말한 바대로 우리가 듣지 않으면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들음은 단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욥기에서 말하는 것처럼 마음에 새기는 들음이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비천한 이들을 높은 곳에 올려놓으시니 슬퍼하는 이들이 큰 행복을 얻는다네. (욥기 5,11)
우리들이 그릇된 가치관의 소용돌이와 자아 정체성의 상실, 거친 삶의 진창에 빠져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우리의 힘이 되고, 마지막 희망과 위로가 되었던 이는 누구였습니까? 사람과 재물과 오염된 사상에 의존하다가 결국에는 온갖 허물로 누더기 신세가 되어도 묵묵히 품에 안아 받아들여 주시고, 온갖 하소연을 들어주시며 응답하신 이는 오직 하느님이십니다. 그 하느님이 바로 우리의 ‘힘’이십니다. 복음은 이제 성령을 입고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 곁에 ‘기쁨과 힘’으로 계시다고 선포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힘과 깨닫지 못한 은총의 말씀이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 가운데 머물러 현실이 됨을 알리고 있습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의 몸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입과 눈, 그리고 귀가 예수님의 눈, 예수 님의 발, 예수님의 손, 예수님의 입, 예수님의 귀가 되어야 한다 고 합니다. 즉 우리들이 받아야 할 영양분(은총)은 예수님의 말 씀, 삶, 표징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당신의 몸을 이루는 모든 지체, 특별히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더욱 끌어안아 보살피심으로써 모든 지체들에게 하느님의 기쁨과 힘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눈을 말씀이신 예수님께 돌리고 그분 안에 머물러 그 힘과 기쁨을 간절히 청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은 조용히 우리 곁으로 오셔서 응답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쁨이 바로 여러분의 힘이니, 서러워하지 마십시오. 힘겨워하지 마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 함께 계십니다.”
– 김두진 바오로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