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32 주일 김두진바오로 신부님 강론

11 8일 연중 제 32 주일 평신도 주일

어릴 때 잔치가 있으면 동네가 흥청거린다. 오는
거지들에게도 문전 박대 하지 않고 풍성한 음식으로 그들과 기쁨을 나눈다. 특히 현대식으로 하는 결혼잔치
보다 옛날 방식의 결혼잔치에서는 하루가 떠들썩하게 잔치를 벌인다. 우리 신자들 중 전통 혼례를 드린
분이 몇 분이나 계실지 모르겠지만, 혼인 잔치는 동네의 구경거리였고 온 동네의 잔치였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혼인잔치에 비유하신다.

사실 유대인들은 신랑과 신부가 약혼하면, 바로
합쳐 사는 것이 아니라 일 년 정도는 각자의 집에 머물러 살게 된다. 결혼식 당일에, 신랑이 신부의 집으로 찾아가 신부와 신부의 친구들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간다.
그리고 많은 손님들을 초대하여 며칠 동안 잔치를 벌인다. 따라서 오늘 복음에 나오는 열
처녀는 신부와 함께 잔치에 갈 신부의 친구들의 이야기이다. 오늘의 풍습으로 말하면 들러리인 셈이다. 신랑은 재림하시는 그리스도를 뜻하고, 열 처녀는 그리스도인들을 뜻한다. 따라서 교회는 슬기로운 처녀들인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의인들과 어리석은 처녀들인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지 않는
어리석은 이들이 함께 공존하는 불완전한 곳이기도 하다. 신랑인 그리스도께서는 재림의 시간을 늦추시고
한밤중에 곧 뜻밖의 시간에 오시는 분이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재림을 늦추시더라도 방심하지 말라. 그분은 예기치 않은 때에 꼭 오시는 분이시다. 따라서 그분이 오실 때까지 그분의 말씀을 실천하며 기다려라. 그렇지
않으면 어리석은 다섯 처녀가 될 뿐이다는 말씀이다.

 

결국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이가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말이다. “누구든지 나 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마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갈 것입니다.”(7, 21). 오늘
이야기뿐만 아니라 성서의 많은 부분에서 하느님은 사람들을 잔치에 초대하는 분으로 묘사된다. 잔치는 여는
사람이 있어 생긴다. 초대받아 참여하는 사람 모두는 기쁘기 한량없다.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이 베푸셔서 생기게 된 나라이다. 그 나라는 모든 사람에게 기쁨이고
즐거움이다.  그렇다면 마태오 복음서가
말하는 슬기로움은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삶이 아닐까? 더 나아가 말한다면 하느님의
나라를 실천하는 사람 아니 하느님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오늘 열 처녀에 대한 비유이야기는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말한다. 선하신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지 않는 어리석은 사람은 그와 같이 불행하다고 말한다. 잔치를 비유의 주제로 삼은 것은하느님, 당신 생각에 그저 기쁘고 즐겁습니다,’라는 시편(9, 1) 말씀을 깨닫게 하고자 한 것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 하느님과 함께 사는 슬기로운 사람이 되자는 이야기이다.
하느님은 우리의 삶이라는 잔치를 베푸셨다. 하느님의 뜻은 멀리 있지 않고, 하느님을 우러러 세상과 이웃을 보고,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기쁨을
확산시키는 데에 하느님의 뜻이 있다. 나만이 아니고 가족 전체가 기쁨으로 살도록 가정을 잔칫집으로 만들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 사회를 잔칫집으로 만들고, 우리 공동체를 잔칫집으로 만드는 것, 나를 뛰어넘어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그것이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할 일이고, 하느님과 더불어 살아가며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오늘 복음은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