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요한 12,28)
지난주에는 이래도 좋을까 싶을
정도로 날씨가 좋아 이대로 겨울이 끝나나 했는데 이번 주는 조금 쌀쌀합니다. 밖을 보니 그래도
나무의 색이 변해갑니다. 나무는 봄에 푸른 옷을 입히면 푸른 옷을 입고, 가을에 단풍 옷을 입히면 단풍 옷으로 갈아입고, 겨울에
옷을 벗기면 앙상한 몸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죽은 듯 살아갑니다. 침묵 속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듯이
말입니다. 나무를 보면서 어떤 처지에서 든지 항상 하느님의 섭리에 온전히 순응하고 사는 나무가
거룩하게까지 느껴집니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씨가 땅에 떨어져 죽었기에 싹이 나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듯이
우리들도 자라야 합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은 만큼 자라나야 합니다. 우리가 자란다는 것은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는 것처럼 하느님께 대한 반항을 죽여야 하고, 하느님께 대한 불평을 죽여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는다.”는 것을 “겸손해
진다.”로 읽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정한 겸손일까요? 그것은 힘의 덕입니다. 강한
사람만이 겸손할 수 있습니다. 진정 강한 사람은 강요 받지 않고 자유롭게 섬기며 자기보다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이 앞에서 고개를 숙여 자유로워집니다. 하지만 이러한 겸손은 하느님에게서 생겨납니다. 맨 처음 겸손을 보이신 분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위대함은
하느님의 본질이지만, 그분께서는 그 위대함을 겸손으로 격하시키신 분이십니다.
겸손의 라틴어는 “humus”즉 흙이라는 단어에 기초를
둡니다. 흙은 가장 낮은 곳에 있기에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비를
받아들이고 햇빛을 받아들이고, 쓰레기를 받아들이고, 추위를
받아들이고 더위를 받아들입니다. 땅은 거부하는 법도 불평하는 법도 없습니다. 모든 것에 모든 것이 되어줍니다. 그것이 땅의
겸손함이고, 그것이 땅의 봉사요 섬김입니다. 인간에
대한 봉사요 섬김은 하느님께 대한 봉사와 섬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땅에 떨어져 죽고 썩어 땅과 한 몸이 되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고 자연과 복음은 함께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한 알의 밀알은 예수그리스도를 말하며 “땅에
떨어져 죽는다.”는 것은 당신의 십자가의 죽음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을 섬기기 위해 가장 낮은 곳인 땅에 고개를 떨구셨습니다. 과연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이도 함께 있을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부끄럽습니다 서로가 잘났고 최고인지라 주변의 사람들 모두가 떠받들어줘야 직성이 풀리는 교만이 우리를 밀알이 되지 못하게 하고 땅에
떨어지지도, 죽지도 못하게 하기에 맺을 열매도 없기 때문입니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하고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라 주님은
말씀 하십니다. 부활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다시
살아나는 봄처럼 주님의 부활을 기다리며 우리 또한 주님을 섬기는 이들로 그분과 함께 하는 행복한 우리였으면 합니다. 따스함을 샘내는 꽃샘추위에 모두 건강하시고 평안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