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신앙
오늘은 교회력으로
마지막 연중 제33주일이며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이다. 이어
다음 연중 제34주일은 그리스도 왕 대 축일이다. 오늘
말씀도 전례에 맞추어 종말에 관계된 내용들이 열거된다. 몇 년 전부터 연중 33주일에 지내던 ‘평신도 주일’은 연중32주일로 앞당겨졌다.
오늘은 연중의 마지막
주일 답게 종말에 대한 말씀이 들려진다 그러나 종말은 희망이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기에 그렇다. 오늘 복음에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 종말에
대한 묘사도 두렵기 짝이 없다. “그 무렵 환난에 뒤이어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내지 않으며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은 흔들릴 것이다.”종말을 상징하는 이런 외적 현상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두려움에 대한 유일한 처방은 하느님께 대한 한결같은 신뢰의 믿음이다. 주님 역시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약한 믿음을 꾸짖으셨다. 두려움은
무지의 산물이다. 주님을 몰라 두려워한다. 짙은
구름 넘어 빛나는 태양 같은 주님을 믿어 알 때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두려움의 구름
걷힐 때 빛나는 태양처럼 구원의 주님은 오신다. 바로 오늘 복음이 장엄하게 상징적으로 묘사하는
그대로이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선택한 이들을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
바로 종말은 심판이자
구원임을 말한다. 어쩌면 이미 시작된 종말이다. 우리
모두 주님의 손 안에 있고, 그 누구도 주님의 손을 벗어날 수 없다.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는 주님이다. 이런 주님을 참으로
신뢰할 때 오늘 지금 여기서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충실히 살 수 있을 것이며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질 것이다. 바로
오늘이 미래이기 때문이며 끝은 새로운 시작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말은 희망의 시작, 구원의 시작이다.
“두려워하지 마라!”는 말씀 뒤에는 언제나 “내가 너와 함께 있다.”는 주님의 약속 말씀이 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 28,20) 그러니
종말까지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의
부활에서 절정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미 오늘 다니엘서에 반갑게도 개인의 부활이 예시되고 있다. 새삼 우리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부활의 희망과 구원으로 직결됨을 말한다. “땅 먼지 속에 잠든 사람들 가운데에서 많은 이가 깨어나, 어떤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어떤 이는 수치를, 영원한
치욕을 받으리라. 그러나 현명한 이들은 창공의 광채처럼, 많은
사람을 정의로 이끈 이들은 별처럼 빛나리라.” (다니 12,2) 바로 우리의 미래에 대한 예언이다 모두에게
열려 있는 하느님의 사랑이요 영원한 생명의 구원이다. 모두가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느님이다. 영원한 치욕은 하느님을 거부해 스스로 자초한 심판이다. 그러니
탓할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일 수 있음을 깨달어야 한다.
“그러나 그 날과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그러니 그 날과 그 시간의 종말은, 또 우리의 개인적 종말인
죽음의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알 수도 없고 알려고 할 필요도 없다. 그 날과 그 시간은 겸허히 아버지께 맡기고 다만 오늘 지금 여기서 내게 주어진 사명에 충실 하면 충분하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이 있다. 내일
세상이 멸망한다 하더라도 나는 내가 생각하는 제일 소중한 일에 희망을 두며 지금의 열심을 살아낼 수 있다면 종말이든 우리의 끝이든 두려움없이 희망을
살아낸다는 뜻 아니겠는가? 그래서 종말론적인 삶은 거창한 이론이 아니다. 사실 우리네 삶은 이미 매일, 종말로 향한 긴
여정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은 새로운 깨우침도 아니다. 그러니 지금 이 삶 속에 하느님의 뜻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마지막으로 나에게 남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것을 지금 내 삶 속에 사랑과 열정에 충실 한 것이 바로 오늘 복음에 나오는 종말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