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30 주일 김두진(바오로)신부님 강론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요즘 ‘TV 다시보기라는 기능이 있다. 이 기능의 목적은 보고 싶었지만 보지 못했거나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다
. 우리도 이다시보기기능을 우리의 삶에서도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삶에서뿐만 아니라 신앙에서도 따분함을 느낀다
. 따분함을 느끼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일상에서나 신앙에서
새로움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 늘 봐왔던 것이나 나의 생각과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들만 보이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의 바르티메오는 어떤 이유에서 눈먼 사람이 되었다. 그러다 기회가 왔고 다시 보기 위해 예수님께 간절히 외치며 자신의 전 재산과도 같았던 겉옷을 벗어 던지고 예수님
앞에 나아가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고 외친다. 예수님을
다시 보게 되어 그를 따르는 이가 된다
.

 

우리도 이런 바르티메오처럼 우리의 삶과 신앙을 다시
보면 어떨까 싶다
.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 기준, 선입견과
판단들을 겉옷 벗어 던지 듯 내려놓아야 한다
. 그렇게 삶과 신앙에 대해 눈먼 상태가 되었을 때 간절히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한다면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실 것이다
, 다시 본다는 의미는 문제아에게서 놀라운 재능이, 꼰대에게서
지혜로움이
, 미운 사람에게서 사랑스러움이, 죄 많은 사람에게서
용서가
, 불의한 세상에서 하느님의 정의가, 고통의 십자가에서
부활의 영광이
, 보잘 것 없는 나 에게도 구원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새롭게 보게 된 눈으로 더욱 선명하게 예수님을 따라 나설 수 있을 것이다
.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우리가 하느님께 바리는 바가 무엇인지 묻는 예수님의 질문에 그는 주저 없이 답한다.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바르티매오의
간청에서 엿볼 수 있지만
, 그는 그전에 보았던 것들을 다시 보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 그전에 보았던 사랑하는 사람들, 멋진 세상, 아름다움들………. 그가 보고 싶어 하는 것들을 다시 보게
됨으로 기쁨을 찾는다
. 우리가 보았던 것 중에 우리가 지금 보지 못하고 사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하는 사람, 멋진 세상, 그 아름다움들을 왜 보지 못하는 것일까? 혹시 내 안에 갇혀, 내 시야를 가리고 있는 대들보를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만 보는 갇힌 마음이기에 기쁨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 나이가 먹어가는 배우자지만, 아름다움과 멋짐은 그대로일
텐데
, 귀염둥이 아이들이 훌쩍 자라나기는 했지만, 사랑스러운
모습은 그대로일 텐데
, 그 전보다 훨씬 나아진 환경에서 살고 있지만 왜 그전에 보았던 아름다움을 볼
수 없이 눈뜬 소경이 되었을까
? 나이가 먹으면서 노안이 되어 잘 보지 못하는 것들 중에는 글씨뿐이 아니라
예전에 보았던 아름다움도 함께 못 본다
.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 바르티매오는 믿음으로 다시 보게 되는 것뿐 아니라 구원을 살게 된다. 내가 지금 무엇을 놓치고 사는지, 내가 무엇을 못 보고 사는지를
아는 사람에게는 다시 보게 해 달라는 기도가 있고
, 다시 보게 됨으로 구원의 기쁨을 살게 된다는 것은
기쁜 일이 될 것이다
. 우리가 아는 지식이 중요하지만, 아는
지식대로 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 보는 각도가 다르고, 이해의
폭이 다르며
, 경험의 지식도 각기 다르기에 불화가 있고, 왜곡이
생기며
, 싸움도 생긴다. 하느님께서 주신 질서에 따라 하느님께서
보여주셨던 기쁨의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야 함에도 볼 수 없어 아귀다툼으로 지옥을 산다
.

 

우리는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들이지만,
신앙을 살아가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 힘들게 살면서도 하느님께 감사하며 기쁨을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도대체 하느님이 내게 해준 것이 무엇이 있냐며 시간도 재능도 그리고 노력도 봉헌 할 이유가 없다고 불평을 늘어놓으며 어둠을 사는 이들도 있다
. 내가 무엇을 보았기에 하느님을 믿게 되었고, 지금 무엇을 보지 못하기에
스스로를 절망과 어둠으로 끌고 가는 것일까
?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느님이시고 인간 모두에게 구원의 초대를 마다하지
않는 분이시지만 거기에는 강요가 없다
. 그런데 스스로에게 갇혀 봤던 것을 볼 수 없게 된다면 이 구원도, 기쁨도 그저 멍에로 다가올 뿐 기쁘지도, 슬프지도 못하며 물에 물탄
, 술에 술탄 듯, 차지도 뜨겁지도 못하다.
사람들의 꾸중을 이겨내고 바르티매오가 외치고 간청했듯, 용기를 내어 예수님께 다가간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주님
저희가 다시 보게 해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