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 다시보기’라는 기능이 있다. 이 기능의 목적은 보고 싶었지만 보지 못했거나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다. 우리도 이 ‘다시보기’ 기능을 우리의 삶에서도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삶에서뿐만 아니라 신앙에서도 따분함을 느낀다. 따분함을 느끼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일상에서나 신앙에서
새로움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늘 봐왔던 것이나 나의 생각과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들만 보이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의 바르티메오는 어떤 이유에서 눈먼 사람이 되었다. 그러다 기회가 왔고 다시 보기 위해 예수님께 간절히 외치며 자신의 전 재산과도 같았던 겉옷을 벗어 던지고 예수님
앞에 나아가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하고 외친다. 예수님을
다시 보게 되어 그를 따르는 이가 된다.
우리도 이런 바르티메오처럼 우리의 삶과 신앙을 다시
보면 어떨까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 기준, 선입견과
판단들을 겉옷 벗어 던지 듯 내려놓아야 한다. 그렇게 삶과 신앙에 대해 눈먼 상태가 되었을 때 간절히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한다면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실 것이다, 다시 본다는 의미는 문제아에게서 놀라운 재능이, 꼰대에게서
지혜로움이, 미운 사람에게서 사랑스러움이, 죄 많은 사람에게서
용서가, 불의한 세상에서 하느님의 정의가, 고통의 십자가에서
부활의 영광이, 보잘 것 없는 나 에게도 구원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새롭게 보게 된 눈으로 더욱 선명하게 예수님을 따라 나설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우리가 하느님께 바리는 바가 무엇인지 묻는 예수님의 질문에 그는 주저 없이 답한다.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바르티매오의
간청에서 엿볼 수 있지만, 그는 그전에 보았던 것들을 다시 보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 그전에 보았던 사랑하는 사람들, 멋진 세상, 아름다움들………. 그가 보고 싶어 하는 것들을 다시 보게
됨으로 기쁨을 찾는다. 우리가 보았던 것 중에 우리가 지금 보지 못하고 사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하는 사람, 멋진 세상, 그 아름다움들을 왜 보지 못하는 것일까? 혹시 내 안에 갇혀, 내 시야를 가리고 있는 대들보를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만 보는 갇힌 마음이기에 기쁨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나이가 먹어가는 배우자지만, 아름다움과 멋짐은 그대로일
텐데, 귀염둥이 아이들이 훌쩍 자라나기는 했지만, 사랑스러운
모습은 그대로일 텐데, 그 전보다 훨씬 나아진 환경에서 살고 있지만 왜 그전에 보았던 아름다움을 볼
수 없이 눈뜬 소경이 되었을까? 나이가 먹으면서 노안이 되어 잘 보지 못하는 것들 중에는 글씨뿐이 아니라
예전에 보았던 아름다움도 함께 못 본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바르티매오는 믿음으로 다시 보게 되는 것뿐 아니라 구원을 살게 된다. 내가 지금 무엇을 놓치고 사는지, 내가 무엇을 못 보고 사는지를
아는 사람에게는 다시 보게 해 달라는 기도가 있고, 다시 보게 됨으로 구원의 기쁨을 살게 된다는 것은
기쁜 일이 될 것이다. 우리가 아는 지식이 중요하지만, 아는
지식대로 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보는 각도가 다르고, 이해의
폭이 다르며, 경험의 지식도 각기 다르기에 불화가 있고, 왜곡이
생기며, 싸움도 생긴다. 하느님께서 주신 질서에 따라 하느님께서
보여주셨던 기쁨의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야 함에도 볼 수 없어 아귀다툼으로 지옥을 산다.
우리는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들이지만, 그
신앙을 살아가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힘들게 살면서도 하느님께 감사하며 기쁨을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도대체 하느님이 내게 해준 것이 무엇이 있냐며 시간도 재능도 그리고 노력도 봉헌 할 이유가 없다고 불평을 늘어놓으며 어둠을 사는 이들도 있다. 내가 무엇을 보았기에 하느님을 믿게 되었고, 지금 무엇을 보지 못하기에
스스로를 절망과 어둠으로 끌고 가는 것일까?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느님이시고 인간 모두에게 구원의 초대를 마다하지
않는 분이시지만 거기에는 강요가 없다. 그런데 스스로에게 갇혀 봤던 것을 볼 수 없게 된다면 이 구원도, 기쁨도 그저 멍에로 다가올 뿐 기쁘지도, 슬프지도 못하며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차지도 뜨겁지도 못하다. 사람들의 꾸중을 이겨내고 바르티매오가 외치고 간청했듯, 용기를 내어 예수님께 다가간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주님
저희가 다시 보게 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