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되어 보아야 부모의 마음을 안다고 한다. 결국 누군가처럼 되지 않으면(부모가 되지 않으면) 그 누군가(부모)를 알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다. 아기가 엎드려 기어 다니면서 서있는 부모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아이가 두 발로 서서 걸어 다니게 되면 비로소 서 있는 부모를 만나게 된다. 예수님을 만나는 방법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려면 그분과 똑같이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다. 십자가는 믿음이고 순종이다. 그리스도처럼 자신을 버리고 순종해 보지 않으면 순종하시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이해할 수 없다.
오늘의 복음말씀은 루카복음에서도 나오는 이야기지만 많은 차이가 있다. 루카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처음 제자들을 부르실 때의 이야기이고, 요한복음의 이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 이후의 이야기다. 루카복음에서는 그들이 예수님께서 시키는 대로 순종하여 많은 물고기를 잡아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지만, 요한복음의 이 고기 잡는 기적은 사람 낚는 어부를 넘어 예수님께서 차려 주시는‘아침 식사’ 곧 ‘성찬례’인 미사가 거행된다.
복음을 좀 더 들여다보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고, 제자들은 배에 있었다. 다른 제자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는데,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가 그분을 알아보고,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하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 베드로는 겉옷을 입고 호수로 뛰어들어 그분께 달려갔다. 다른 제자들이 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왔다. “그들이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고 한다. 제자들의 아침을 준비해주신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손수 마련하신 아침 식사인 성찬례를 통해서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가 만들어지고 유지된다. 그러기에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몸을 나누는 것이야 말로 부활 신앙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의 가장 큰 임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늘 복음에서도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으로만 물고기를 잡으려 하였기에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한다. 그런데 물가에서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지라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평생 물고기를 잡으며 살았던 노련한 어부였던 베드로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오른쪽에 그물을 던진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수난을 당하실 때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며 부인하였던 사람이다. 그런 자신에 대한 실망 때문인지 지금은 매우 겸손하게 변하였다. 어부였고 자기가 제일 잘하던 그물질을 하는 것까지 자기의 뜻을 굽히고 순종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있다. 결국 베드로는 순종하여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된다. 무엇보다 순종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게 된다. 순종을 통하여 순종의 완성이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려면 우리도 이렇게 십자가의 순종을 실천해야 한다. 원수까지 사랑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려고 해야 한다. 예수님처럼 사는 만큼 예수님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물고기의 모습은 바로 예수님의 모습이다. 물고기가 음식이 되기 위해서는 물 밖으로 나와야 하며, 죽어야 하고 그리고 불에 구워 져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인간들에게 구원의 원천이 되기 위하여, 당신의 신성을 버리시고 즉 물 밖으로 나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영광을 받으셨고(성령의 불꽃) 우리를 구원하셨다. 이제는 우리의 삶도 이렇게 변해지도록 회개해야 할 것이다. 회개는 고해성사 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전환, 삶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던가? 즉 나의 고집과 선입견에서 과감히 벗어나(물 밖으로 나와),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나 자신이 죽는 삶(십자가)으로 부활의 기쁨을 체험하는 삶(성령의 불로 타오름)이 되어야 한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당신의 숨을 불어넣으시며 성령을 불어넣어 주셨으니, 다른 사람에게 생명의 양식이 되는 삶이(와서 아침을 먹어라) 되어야 한다. 고기가 물속에 있으면서는 음식이 될 수 없다. 밖으로 나와야 한다. 우리 자신 항상 나의 편견이나 아집에서 하느님을 향해 끊임없이 탈출하는 삶이 필요하다. 여기에 우리의 삶의 근본적인 변화와 하느님 안에 기쁨이 있다.
다음으로 153마리에 관한 것이다. 이 100이라는 숫자는 앞으로 그리스도께로 모이는 이방인들의 가득 찬 숫자라는 의미다. 그리고 50 역시 완전한 숫자 7x 7에 1이 더해진 숫자이다. 그래서 50은 여기서 또한 충만한 숫자이다. 마지막으로 3은 삼위일체를 뜻하며 모든 것은 그 영광을 위하여 이루어진다는 뜻이라 볼 수 있다. 7은 성령을 나타내는 수이다. 그래서 1부터 17까지를 더하면 153이 된다. 이 숫자는 계명과 성령 안에서 은총을 나누는 모든 사람의 수를 상징한다고 한다. 153은 물고기의 종류가 또한 그만큼 된다는 것으로 모든 이방인 민족들을 뜻하며 고기가 그토록 많이 잡혔는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교회라는 그물은 아무리 많아도 찢어지지 않을 정도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 그물을 베드로가 끌어올렸다는 것은 베드로의 역할은 백성들을 모아 사도들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라는 뜻이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하신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잔치를 벌이신다.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물에서 나와 죽어 음식이 되는 고기처럼, 하느님이신 아드님이 사람이 되시어 인간의 구원의 빵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드리자. 오늘도 아침을 먹어라 하시는 그분의 초대에 감사하며 그분의 살과 피로 우리를 살리시는 그분을 배우고 가서 부활의 증인 답게 그분의 되살아나심을 선포하자. 와서 아침 먹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