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평화
오래된 교회 전승에 따르면, 요한 사도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침대에서 “내 자녀들아,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중얼거리며 운명하셨다 한다. 예수님께서 주신 사랑의 계명을 우리에게 전해주려고 마지막 순간까지 혼신의 노력을 다한 것이다. 그만큼 사랑의 계명은 중요하다. 사람들이 폭력으로 인해 죽어가는 뉴스가 전혀 놀랍지도 않고 전쟁의 폭력이 가득한 요즈음 더욱 절실한 계명이 아닐까 싶다.
사랑의 다른 이름은 평화다. 많은 사람들은 평화는 지키는 것이기에 강한 힘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평화는 강한 힘에서 오지 않고 그분의 사랑이 꽃피운 십자가의 영광으로부터 온다. 용서와 희생과 자기 비움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진정한 평화가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화는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다. 제자들을 사랑하신 예수님께서는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라 약속하셨다. 제자들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변화되었다. 두려움에 싸여 있던 그들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증언하는 사도로 바뀐 것이다. 자신들이 생각해도 놀라운 변신이었기에 그들은 성령께서 주시는 부활에 대한 확신과 열정을 가지게 된다.
사도행전에는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예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제자들의 활동상이 잘 담겨 있다. 오늘 1독서에서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고 활동한다. 그들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정신을 어지럽게 만드는 거짓 사도들에 반대하여,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충실하게 복음을 선포한다. 예수님께서 떠나신 그 자리에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를 이끌고 계신데, 오늘 2독서에서 들은 요한 묵시록은 우리 모두가 들어가게 될 하느님 나라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하느님의 영광이 가득하고 어린양의 빛으로 가득 차 있는 그 나라는 우리가 들어가게 될 나라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주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이다.
말을 잘 듣는 아이가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그런데 모든 아이들이 귀머거리가 아닌데 왜 우리 아이는 말을 안 듣는다고 할까? 그렇다. 아이들이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들은 말씀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 하는 말이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만, 누가 실천하는가? 하느님께 말 잘 듣는 자녀인가 아니면 듣기만 하고 실천 없는 믿음의 자녀들인가?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주님의 말씀은‘살아있고 힘이 있다. 그 말씀 안에 온갖 어둠을 물리칠 수 있는 빛이 있고, 인간의 한계인 죽음을 이기는 영원한 삶이 있다. 말씀에는 주님의 다시 오심에 대한 약속이 있고, 영원한 생명에 대한 보증이 있다. 그 말씀 안에는 우리가 가야할 길이 안내되어 있고 우리가 겪는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이 있다. 그분의 말씀은 길이고, 진리이며 생명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 안에서 생각해 보자. 사랑의 표현은 여러 가지의로 나타나지만 먼저 상대의 말을 듣는 것이다. 사랑은 들음으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서로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 있다면 아직 참사랑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없다. 배우자를 사랑한다면 배우자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자녀를 사랑한다면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부모를 사랑한다면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이웃을 사랑한다면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내 소리를 먼저 들려주지 말고 들은 후 실천해야 한다. 사실 듣는다는 것은 행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야고1,23) 라고 경고한다.
우리의 일상에서 사랑한다면서 상처를 주고받는 일이 참 많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고 소유하려고 하는 욕망들에 의한 상처들이다. 가끔은 지나치게 일방적인 사랑 때문에 받는 쪽에서 부담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자유를 주는 것이다. 떠나 보낼 수 있는 내적 자유와 떠날 수 있는 자유로움이 공존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다.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사랑하셨다. 그리고 당신을 십자가에 못을 박는 이들까지 사랑하시고 용서하셨다.
많은 이들이 평화를 갈망하지만 평화를 누리지 못한다. “예수님께서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고 하신다. 세상의 평화는 ‘밖’을 지키는 데에서 급급하다. 그래서 핵으로 무장하고 국경을 튼튼히 한다. 그러나 진정한 평화는‘안’에서 온다. 평화를 원하거든 먼저 하느님 안에 머물러야 한다. 그래야 오늘 복음 말씀처럼 마음이 산란해 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게 될 것이다.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을 묵상하면서 다시 한 번 우리가 하느님 나라의 백성으로 진정한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잘 기억하고, 그 말씀을 실천해야 함을 기억하도록 하자. 그러면서 망각에 빠져 사는 우리를 일깨워 주시는 성령께 다시 한 번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내고, 언제나 그 말씀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청하자. 하느님도, 예수님도 계시지 않는 듯 보이는 이 세상 안에서 두려워하거나, 산란해지지 않고, 평화를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 길 기도 하자. 부활 시기를 마무리해가는 지금 다시 한 번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 아버지 오른편에 오르셨지만, 성령을 보내시어 우리 곁에 여전히 살아 계심을 기억하는 우리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