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순교자 대 축일
오늘은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정하상 바오로와 그의 동료 순교자, 즉 한국 순교자 대 축일이며 우리 성당의 주보성인(한국 순교자)들의 축일이다. 그들의 순교정신을 다시 한 번 기억하고 배우는 날이다.
오늘 복음말씀은 예수님의 첫 번째 수난예고(22절)와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사건(9,2836) 사이에 있다. 즉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이라는 말씀은 모든 이를 불러 모으시는 보편적인 초대다. 성경에서 따라 간다는 것은 제자 됨, 곧 예수님의 삶과 사명과 운명을 함께 나눈다는 뜻이다. 몇 주 전에 이미 말씀드렸지만 베드로가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한탄에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셨다. 영어로 Get behind me Satan. 즉 내 뒤로 물러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예수님 앞에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뒤에 서있어야 한다.
이런 따름의 삶에서 제일 먼저 행해야 하는 것이 '자신을 버리는 것'이다. 어떤 재산 많은 청년이 주님께 “선하신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루카 18, 18)라 묻자 예수님께서는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하셨다. (18, 22)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따르려 했지만 세상의 지위와 명예, 그에 따른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해 예수님을 포기한다. 자기를 버린다는 것은 세상의 부귀영화와 권세, 재물에 대한 그 모든 욕망을 버리는 것을 말한다. 사도 바오로는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필립 3, 8) 라고 했다. 사실 누구를 따르려면 그 따름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버리는 결단이 필요한 법이 아니던가?
둘째로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수행이다.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선택의 여지없이 질 수밖에 없는 삶의 십자가가 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기꺼이 고통을 인내하며 견디는 것이다. 십자가 자체는 모든 이에게 고통일 뿐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가에 따라 인생의 장애가 되기도 하고 성공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 또한 십자가는 거부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인간 실존에 따르는 필연적인 것이기에 극복할 수밖에 없는 과제다. 그러나 십자가를 받아들여 묵묵히 지고 갈 때 십자가는 참된 삶의 의미를 깨우쳐주는 도구로서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징검다리가 될 것이다. 따라서 그분의 제자라 함은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며”(시편 1,2) 날마다 주어지는 자신의 십자가를 봉헌하는 가운데 우리의 일상 안에서 이루어가는 것이다.
자기를 버리는 것이 내적 문제라면 십자가를 지는 것은 외적 문제일 것이다. 모든 사람은 나름대로의 십자가가 있다. 각 사람의 개성이 다르고 재능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르듯이 각자의 십자가는 크기도 모양도 무게도 모두 다르다. 문제는 그 고통과 고생이 의미 있는 고통인지 무의미한 고통인지 하는 것이다. 공부하는 것도 고생이고, 직장 생활도 고통의 연속이다. 사업을 한다 해도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누구나 자기 십자가가 가장 무겁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남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예수님의 제자라면 남을 위한 희생, 남을 살리기 위한 죽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십자가를 피해 갈 수 없다. 십자가를 벗어버리려고 다른 길로 피해 보아도 고통은 늘 그 자리에 있다. 사도 바오로가 가는 선교여행 길도 핍박과 질병이라는 십자가가 놓여 있었지만, 사도 바오로는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어떠한 것도 자랑하고 싶지 않습니다.”(갈라 6, 14) 라고 고백한다.
셋째로 예수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투신을 통해 완성에 이르게 된다. 일상 안에는 우리 자신의 가치를 교란시키고 결단에 장애를 초래하는 지상의 가치들이 있다. 곧 부귀, 권세, 명예, 성공 등의 지상 가치는 명백한 목표를 제시하며 기쁨과 보람을 동반한다. 그러나 ‘예수님 때문에’ 투신하게 되는 가치, 곧 자기 버림, 헌신적인 십자가의 희생, 나눔, 용서, 이웃 사랑 등은 신앙 안에서 빛을 발하며 보이지 않게 다가온다. 이처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 투신의 향방을 제시한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잠시 뿐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의 방향은 확실해 질 것이다. (2코린 4,18)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루카 9,25) 사도 바오로는 우리에게 경고 한다.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코린 전15,19)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늘로 부르시어 주시는 상을 얻으려고 그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필 3,14)
오늘 예수님을 향해 오직 한마음으로 순교의 길을 걸었던 신앙 선조들을 기억한다. 그분들의 삶에도 세상의 가치와 잣대가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음은 주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에 대한 열정이었다. 오늘, 우리는 순교정신을 되살려 순교 (martyr; 증거)라는 말 뜻대로, 우리의 삶의 현장이 신앙을 증거 하는 장소임을 명심해야 한다. 순교정신을 이어받는 것은 그분을 따르는데 방해되는 모든 것을 버리는 것에서 출발한다. 또한 십자가를 지고 그분의 삶을 기억하며 그분을 따라야 한다. 순교는 사랑이며, 확고한 믿음이기에 우리는 순교자들을 큰 영광으로 기억하고 그 순교정신을 이어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