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교사다.
모든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는 전교주일이 돌아왔다. 이날은 1926년 선교 사업에 종사하는 선교사나 선교지역 교회를 정신적, 물질적으로 돕고자 제정한 날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1822년 프랑스에서 한 평신도 단체에 의해 설립된 '교황청 전교회'가 전교주일 제정 필요성을 교황에게 요청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교황 비오 11세는 전교주일 제정과 함께 "이날 하루는 선교를 위해 기도하는 날로 정하고 모든 교구와 본당, 가톨릭 기관에서 이를 거행하고 선교 헌금을 하도록” 권장하셨다
그 취지처럼 전교주일은 복음 사명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전 세계 선교사들을 기억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우리 성당에서는 전교주일을 맞아 오랫동안 선교 바자회를 해 왔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중단 했다. 올해도 코로나의 위험으로 인해 작년에 한 것처럼 간단하게 식사를 나누며 우리가 도와줄 이웃을 위해 소박하게 치르려 한다. 선교 바자회를 위해 많은 이들이 모여 김치를 담그고, 만두를 빚고, 서로 떠들고 웃으며 왁자지껄 하며 선교 바자회를 준비하는 큰 행사를 못 치른다고 해서, 그 뜻마저 작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무리 행사를 줄여 한다 하더라도 본당 모는 이들이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토요일부터 기쁘게 음식을 준비하며 선교의 기쁨을 나누어 주신 수녀님들, 선교부장님과 선교회원 여러분들, 모니카 회원들과 사목위원 모두 한 마음으로 애써 주심에 감사드린다. 특히 올해는 한국에서 이민자들의 자녀를 위해 운영하고 있는 성 요셉 상호 문화 고등학교를 위해 선교주일 헌금을 하고자 한다. 이미 본당 수녀께서 설명 해 주신 대로 전남 강진에 있는 이민자들의 자녀들을 위한 학교다. 우리 역시 이민자이기에 이민자의 설움과 어려움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바로 그들의 힘듦이
우리의 힘듦이었음을 공감하는 우리에게 그들을 위한 사랑은 더 큰 의미가 있지 않나 싶다.
전교는 세력을 불리고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 식의 땅따먹기 싸움은 아닐 것이다. 오늘 복음은 주님의 열 한 제자가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과 작별하는 모습을 그린다.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삼 년 동안을 함께 먹고 마시며 예수님과 함께 살아온 제자들 중에 의심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속마음을 다 아시는 주님이심에도 그분께서는 누가 의심하는지 따지지도 않으시며 복음을 선포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흔히 믿음이 약해서 전교를 할 수 없다고 핑계를 댄다. 전교는 믿음이 좋은 사람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믿음이 완벽 해지면 선교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오늘 복음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선교나 전교는 의심하던 제자들이나 주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던 제자들이나 함께 물려 받은 사명이었다. 선교는 주님께서 함께해 주시기에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신자들이 품고 있는 오해 중 하나는 전교는 "개종을 위해 무조건 성당으로 불러들이려는 노력"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모두 우상숭배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들 모두 회개해서 성당에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밀어붙이는 것은 올바른 전교가 아니다. 또한 전교 띠를 두르고 전교 지를 나누어 주는 직접적인 전교를 경박하고, 점잖지 못한 행위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내가 열심히 살아가면 그것을 보고 성당에 오는 것이지 왜 점잖지 못하고 경박스럽게 나가서 그렇게 시끄럽게 전교를 하느냐고 불평하는 이들도 있다. 부분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신앙은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살면 되고, 교회를 위해 약간의 봉사와 약간의 기부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옳은 생각이 아니고 전교의 의미로도 충분하지 않다. 선교가 사랑과 자비의 실천이고 증거라 한다면, 우리의 시작은 작은 일부터다. 우리 집 앞을 청소하면서 이웃의 집 앞도 청소해 주고, 불쌍한 이들에게 관심을 보이며, 소외된 이웃들을 찾아볼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선교를 시작한 셈이다. 길거리에서 "불신지옥 믿음천국"을 외치는 것 보다 더 급한 일은 자비의 하느님을 우리의 행동으로 전하는 것이다.
지금은 전교나 선교 대신 복음화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복음화가 선교와 다른 것은 단순히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사람 역시 복음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부터 복음 안에서 행복하지 않으면 내가 전하는 복음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 하다. 복음화는 우리가 받은 부르심을 생각하고, 우리가 실천하고 있는 신앙을 새롭게 이해하며,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길이다. 따라서 이 시대의 선교는 고통과 소외 중에 사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길을 걸으며, 참 행복과 자유의 길을 함께 찾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하고 있는 선교주일의 돕는 마음은 바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보여주는 복음 선포일 것이다. 선교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시는 분인지를 세상에 외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하신 그분을 모시고 있는 한 우리 모두는 선교사이어야 하고, 전교하는 이들이어야 한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