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진(바오로)신부님 연중 제 32 주일 강론

 

 

11 6일 연중 제 32 주일 복음 묵상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루카 복음에 담겨 있는 매우 독특한 이 표현은죽음을 완전히 다르게 이해하도록 이끌어 준다지상에서 죽는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하느님 앞에서는 여전히 살아 있는 존재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부활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율법을 앞세운 바리사이들과 현실의 삶만 인정하여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파의 이념과 종교적 싸움 안에서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들려진다.

 

바리사이파는 우리가 나름 알고 있지만 사두가이파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들이 성서에 잘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주로 사제들로 구성되어 있던 사두가이파는 기원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면서 몰락하기 시작한다. 사두가이들은 주로 예루살렘의 귀족 계층에 속한 사제들이었다교리적인 면에서 사두가이는 바리사이들이 중시했던 구전 전승을 거부하고 기록된 율법 만을 존중했기에 죽은 이들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 내세를 인정하지 않는 그들의 신학이었기에 그만큼 더 현세를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중시했던 것은 오직 성전 예배를 유지하는 것이었고이를 통하여 기득권을 보전하려 했다기득권 보장 만이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였다그러나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면서 그들의 기반은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신약 성경에서 그들이 바리사이들에 비해 드물게 언급되는 것은신약 성경이 형성되던 시기에 이미 그들이 영향력을 잃은 상태였기 때문이다예루살렘 성전이 1세기 이후에 다시 재건되지 않았으므로 이스라엘에서는 사제 계층이 다시 일어설 수 없었다.

 

이렇게 서로의 신학의 관점이 다른 사두가이와 바리사이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두가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모세 오경의 구절을 근거로 설명하신다모세가 하느님을 아브라함의 하느님이사악의 하느님야곱의 하느님이라 부른다면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며 아브라함이사악야곱은 하느님 앞에서 당연히 살아 있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예수님의 논리에 따르자면 지상에서 우리는 육신의 죽음을 맞지만그 영혼은 하느님 앞에서 계속 살아 있다는 것이다. 부활이란 우리의 영혼이 종말 때 완전히 변화된 몸으로 부활하는 것이다부활을 믿는 이들이라면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일곱 형제와 어머니처럼 진리를 위하여 기꺼이 목숨마저 내어놓을 수 있는 힘과 용기가 생긴다. 부활이라는 믿음 때문에 십자가를 기꺼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1독서에서는 일곱 형제의 순교 이야기가 등장한다언제 들어도 우리를 숙연케 만드는 장렬한 신앙 고백이다. "온 세상의 임금님께서는 당신의 법을 위하여 죽은 이들을 일으키시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실 것이오." 모진 고문과 조롱모욕 앞에서 형제들이 내놓는 대답은 한결같다그들은 부활에 대한 신념으로 무장하고 있어 이교 예식에 당당히 저항한다이방 민족의 폭력과 일방적인 배교 강요에 대해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느님께 신의를 다하려는 그들은 육 적인 생명을 과감히 포기한다이는 목숨이 하찮아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보상하시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기대감과 신뢰 때문이다그러나 사두가이들의 믿음에 의하면 이 일곱 형제의 죽음은 있지도 않은 부활 때문에 처참히 고문당하고 귀한 목숨까지 잃는 바보들에 불과하다하지만 성경 말씀은 일관되게 영원한 생명을 전하고 있다.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엄청난 고통 앞에서 부활 신앙을 견지할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려준다. "주님은 성실하신 분이시므로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고 여러분을 악에서 지켜 주실 것입니다"(2테살 2,3). 초대교회 신자들 역시 박해와 순교의 위협에서 용기를 내야 했다신앙을 지키는 원동력은 자기의 인간적 힘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북돋아 주시는 힘이었다세상의 악에 의해 스러지지만 죽음이라는 악그 마지막 원수에게서 구출되리라는 희망은 "주님의 성실하심"에 기인한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이끄시어 하느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이르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2테살 2,5). 사도 바오로의 자상하고 사려 깊은 축복은 일상의 십자가에 흔들릴 우리의 실존을 깊이 이해하는 마음에서 나온다꼭 죽음으로 신앙을 증거 하는 순교가 아니더라도 이 세상에서 우리가 견뎌야 할 도전은 만만치 않다성실하신 하느님께 충실한 사랑으로 응답하려는 마음 역시 주님께서 일으키시고 이끄신다.

 

러닝머신이 만들어진 이유가 범죄자를 고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시는가어떻게 보면 운동은 그야말로 몸에 고문을 가하는 것이다그렇게 고문에 가까운 운동을 하지 않으면 날씬하고 건강한 몸매를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렇다! 고통 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다이것을 아는 삶이 부활을 믿는 삶이다십자가의 죽음 없이 부활이 없듯, 십자가의 삶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당연히 살아야 할 삶이다.  

 

 우리는 지금 위령 성월을 지내고 있다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심을 믿으며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우리가 신비적 죽음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살아내야 한다. 우리의 고백대로 우리들 보다 먼저 가신 성인들과의 통공은 우리 모두를 하느님 나라로 인도할 것이다

 

하늘에 계신 거룩한 이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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