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16일 부활 제 2 주일 김두진(바오로)신부님 강론

 

4 16일 부활 제 2 주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오늘은 부활 제2주일이며하느님의 자비의 주일이다. 오늘은 전통적으로 부활 성야에서 흰옷을 입고 세례를 받은 새 신자들이 흰옷을 벗는 날이라 해서 사백주일 (捨白主日)이라 불렀다.

   

오늘 복음은 부활 첫째 날과 부활 여드레 째 날에 벌어진 일을 함께 들려준다. 첫째 날의 일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불안과 불신에 빠져 두려워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어성령을 주시며 파견하시는 장면이다. 여드레 째 날에 벌어진 일은 의혹과 불신에 차 있는 토마스에게 자비를 베푸시어당신의 부활을 확인시켜 주시는 장면이다.

   

부활 첫째 날 저녁에 있었던 일이다제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엠마오에서 돌아온 두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들었지만믿지 못하고 두려워 문을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들어와 그들 가운데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시며 두 번씩이나 평화를 건네 주신다특히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습대로 만드신 첫 사람 아담에게 숨을 불어넣으시어 살아 있는 생명체가 되게 하신 것처럼(창세1,27;2,7 참조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어 주신다. 그러나 사람의 첫 창조에 견주면 이제 예수님의 부활로 제자들에게 주어진 새 창조의 특권은 성령을 통한 죄의 용서를 전하는 것이었다. 사실, 부활 첫째 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찾아오시고 부활하심을 보여주셨지만, 여드레 째 날에도 여전히 의혹과 불신으로 두려움에 떨며 문을 닫아걸고 집안에 숨어 있었다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 한 가운데 서시며 토마스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우리들의 믿음의 쌍둥이라고 볼 수 있다토마스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과 함께 죽기를 원했으며 그분과 함께 있기 위해 어디로 가느냐고 묻기도 했던 열정적인 제자였다이런 토마스는 부활 목격 증인인 제자들의 증언을 통해 믿기를 거부하고 어쩌면 우리처럼 예수님 부활에 대해 믿기 힘들어하는 우리를 대변하듯 직접 체험하기를 원한다토마스는 우리들처럼 부활하셨다는 예수님을 제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는 믿을 수가 없었다토마스는 다른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자기들에게 나타나셨다고 했을 때 아마 ‘자네들이 본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데?’라고 했을 것이다. 토마스는 남이 아닌 내가 직접 보고 만져봐야 믿을 수 있다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어떻게 보면 고집불통같이 보이지만토마스의 입장으로 볼 때신앙은 자기 삶에 체험적인 믿음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볼 수 있다. 아 우리의 쌍둥이 토마스여!

 

   

마침내 토마스는 그렇게 부활을 불신하고 거부하고 있는 자신을 이미 환히 알고도 믿고 용서하시는 그분의 사랑과 자비를 체험하게 된다마치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나서야그 배신을 미리 다 알고도 먼저 믿어 주시고먼저 용서하시고먼저 사랑해주신 그분의 자비를 깨닫고 울었던 것처럼 용서와 사랑에 비로소 토마스의 의혹과 불신의 벽이 무너지게 된다바로 이 용서의 체험과 자비의 체험이야 말로 바로 부활의 표시라 할 수 있다바로 여기에서 그의 불신과 의혹은 믿음으로 바뀌고그의 거부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는 탄성의 믿음으로 바뀐다.

   

부활의 삶은 용서하고 자비를 베푸는 삶에서 드러나게 된다. 용서와 자비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살아 계신다는 표징이 된다그러니 자비주일을 맞은 오늘우리는 자비를 입었으니 자비를 베푸는 일용서를 입었으니 용서하는 일이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이 된다바로 이 용서가 우리에게 먼저 베풀어진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에 대한 감사요우리를 위해 생명을 내어 주신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감사가 된다또한 하느님의 자비인 죄의 용서를 세상에 선포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근본적으로 보고 나서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보게 되는 종교이다다시 말해알고 나서 믿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그래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전혀 믿지 못한 토마스의 불신앙과 의심을 책망하며그를 회의론자나 의심하는 사람의 대명사로 말하지만토마스가 보인 행동은 단순한 회의론자가 갖는 의심이 아니라 자신의 믿음을 더욱 확고하게 하기 위한 몸부림이었고그런 의심을 통해 토마스는 누구보다 강한 미음을 가지게 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토마스의 체험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자기의 신앙이 어느 순간 3인칭 신앙으로 멈춰 서거나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다른 제자들이 보았으니까 나도 당연히 본 것이 되거나다른 사람들이 믿으니까 나도 믿어야 하는 신앙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그러므로 예수님께 대한 신앙은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통해 철저히 자기만의 체험적인 신앙으로 바뀌어야 한다.    

 

신앙이란 철저히 개인적인 결단과 도전이고하느님을 향한 삶 전체의 내어줌이기에 남의 신앙이 대신할 수 없다. 토마스가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한 것처럼 우리도 남이 대신 체험한 하느님이 아니라 내가 체험한 저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의 신앙에 의해서 뒤따라가는 신앙만으로는 나의 신앙이 살아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쌍둥이라 불리던 토마스의 고백이 우리의, 아니 나의 고백이어야 한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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