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4일 성지 주일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 받으소서!
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이다. 성지주일은 예수님께서 수난 전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성주간 월요일에는 예수님의 죽음을 예고하고(요한 12,1-11), 화요일에는 제자들의 배반을 예언하며(요한 13,21-33.36-38), 수요일에는 유다의 배반과 예수님께서 파스카 축제를 지내신 사건을 기념한다(마태 26,14-25).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승리와 존경의 표시로 겉옷을 길 위에 깔고 성지를 흔들며 예수를 환영했다고 복음은 전한다. (요한 12:12-14, 마르 11:8, 마태 21:8) 이 날 축성된 성지는 1년 동안 잘 보관하였다가 다음 해에 태워서 재의 수요일 이마에 재를 바르는 예식에 사용된다.
우리가 세례를 받음으로 하느님의 자녀로 하느님께 봉헌되었고, 세례를 통해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리스도를 기꺼이 따르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거룩한 삶으로 초대되었다. 해서 우리는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이마에 재를 얹고 회개하라는 교회의 권고에 따라 회개의 삶을 살아가는 거룩한 순례에 동참했다. 회개는 고백성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일으켜 세워 편함에 길들여 있던 자신을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이에 반대되는 내 생각, 내 습관, 내 생활방식을 바꾸는 것이 참회의 행태로 나타나야 한다. 회개가 필요한 이 때, 예수님의 수난이 좀 더 가까이 보이는 이 거룩한 때에 우리의 회개의 삶이 무엇인지 더 집중하기위해 십자가의 예수님을 가까이 그리고 자주 뵙고 내 십자가를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한다.
우리가 화가 나면 '죽여 버린다.'는 말을 한다. 끔찍한 말이다. 그러나 실상 화가 난다고 사람을 죽이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또 힘이 들면 '죽겠다, 죽을 것 같다'며 푸념하지만, 죽음은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을 뜻하기에 죽음을 진정으로 반기는 사람은 없다. 남의 죽음도 슬퍼한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구호물자를 받으러 온 하마스 사람들에게 총격을 가해 어린이들과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뉴스로 보면서 기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가는 죄 없는 이들의 눈물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과연 있을까?
하느님의 침묵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우리를 더 아프게 한다. 오늘 제1독서는 이사야 예언서의 '주님의 종의 노래'를 들려준다. 주님의 종은 극심한 '모욕, 수모, 고통, 굴욕' 속에서도 주님께서 도와주고 계심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 앞에 닥친 운명을 거역하지도 않고 빠져나갈 길을 도모하지도 않는다. 오직 그의 얼굴을 늘 주님께 향한 채로 자신에게 닥치는 악에 의연히 맞선다. 하지만 이런 말씀이 그 눈물 앞에서 어떤 위로를 줄 수 있을까? 침묵하시는 하느님을 어떻게 알아들어야 할까?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있는 모든 존재가 예수의 이름을 받들어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게 되었도다" 예수 고난회원들은 성무일도를 바치기 전에 먼저 무릎을 꿇고 장엄하게 이 기도를 바친다. 오늘 제2독서에서 노래 한 '그리스도 찬가'(필리 2,6-11) 중의 끝부분이다. 예수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주님이시라 고백하며 하느님을 찬양하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시지만, 당신 스스로 자신을 비우시고 종의 모습을 취하시어 가장 낮은 인간의 모습으로 가장 높게 십자가에 오르셨기 때문이다. 이런 예수님의 '자기 비움(Kenosis)'이야말로 우리가 제일 어려워하는 자기 중심적인 모습에서 회개하는 영적 회개가 될 것이다. 사실 모든 악은 내 안에 있다. 그래서 내가 나를 버리지 못하면 하느님을 따르는 삶을 살지 못한다. 남의 탓이 커 보이는 이유도 기실 내 안에 커진 나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더 크다. 해서 자기 비움은 겸손을 통해 이르는 영적 성장의 최고봉이 아닐까 싶다.
오늘 '호산나 다윗의 후손, 하느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 받으소서.'하며 예수님을 환호하던 군중들이 순간에 돌변하여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친다.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은 "저는 아니겠지요?"하며 절대로 주님을 배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장담하던 이들이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는 모두 도망친다. 편하게 지낼 때는 주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우리의 장담이 이웃 앞에서는 그저 초조한 마음으로 내 뜻과 욕심만 채울 궁리로 변하는 우리는 위에 열거한 사람들 중에 누구를 닮았을까? 우리의 거룩한 순례의 여정에서 회개했음을 행실로 보이는 참회의 생활로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부활하시길 바란다.
호산나 다윗의 후손,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 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