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일 사순 제 4 주일
사순 제4주일은 전통적으로 '기쁨의 주일'로 지낸다.
사순절에 무슨 기쁨인지 의아해 하시겠지만, 우리의 공로를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공로를 통해 구원의 선물을 받게 된 것을 미리 경축하는 것이다. 부활의 기쁨은 바로 이 구원의 선물에 대한 넘치는 기쁨을 성대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순시기는 우리 삶의 참 기쁨을 찾도록 한다. 기쁨이 솟아나오는 원천을 찾아가는 시기이다. 사실 우리는 재물에서, 오락에서, 건강에서, 인간에게서 기쁨을 찾지만, 이런 데서 오는 기쁨은 스쳐 지나가는 것이기에 영원한 기쁨이 될 수 없다. 이런 것들은 우리를 잠시 즐겁게 할 수 있지만, 한 순간 깊은 슬픔과 고통에 빠지게 한다.
오늘 2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우리가 갖는 기쁨의 원천을 이렇게 밝힌다.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에페 2,8-9)
그러니 우리가 열심히 잘 살아서 우리가 많은 은총을 받고 또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우리는 이 구원의 선물을 아무런 대가 없이 무상으로 거저 받았다. 우리가 잘 살든 못 살든 공로가 많던 상관이 없다. 모든 것을 공짜로 선물로 받은 것이다. 사실 우리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리고 죽을 때와 죽고 나서조차도 모두 공짜로 받은 것들이다.
오늘 복음의 말씀은 나코데모와의 대화에서 나온 이야기다. 니코데모는 바리사이파에 속하는 유대 최고회의 의원으로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저명 인사였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요한복음서는 십자가를 모세의 구리 뱀에 비유했다. 구리 뱀의 이야기는 민수기(21,4-9)에 나오는 이야기로 옛날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헤매고 있을 때, 불 뱀이 나타나 사람들을 물었고, 물린 사람들은 죽어간다. 모세가 구리로 뱀을 만들어 높이 달아 놓으니, 그 구리 뱀을 쳐다본 사람은 모두 치유되었다는 이야기다.
복음서는 민수기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옛날 광야의 구리 뱀과 같이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의 징표라고 한다. 그것이 구원을 의미하는 이유는 하느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셨고, 그 예수님은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한 결과,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다는 것이다. 사랑과 헌신의 결과가 십자가의 죽음이었고, 십자가는 세상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지극한지를 말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빛이신 예수님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려 하셨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리고 스스로 어둠을 택한 이들이 내리는 심판은 자기들 스스로 내린다고 말한다.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3,19-20) 즉, 악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어둠을 찾아가는 사람들이니 빛을 볼 수도 믿을 수도 없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모세의 구리 뱀은 앞서 설명한 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여준다. 출애굽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불평불만을 해서 불 뱀에 물려 죽게 되지만 뱀에 물린 사람이 기둥 위에 달린 구리 뱀을 쳐다본 사람은 살아난다.
구리 뱀을 통해 살아날 수 있던 것처럼,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빛으로 나올 수 있다. 즉, 죄라는 독사에 (어둠에) 물린 사람은 누구나 주님을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죄가 용서되는 치유가 있을 것이며 영원한 생명도 얻을 수 있다. 주님은 우리를 심판하시려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다. 그래서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죄로 기울어져 있을 때, 오로지 매달릴 분은 주님밖에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죄인이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접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더욱 더 주님께 매달려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하느님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 사랑의 지극함을 기억하는 사순 시기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