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31일 주님 부활 대축일 김두진(바오로)신부님 강론

 

3 31일 주님 부활 대축일

얼마 전에 내 나이 또래 신자에게 불평 아닌 불평을 했다. “자다가 자주 깨는 것은 정말로 싫어요.” 그 신자분의 대답은 “이이고 신부님, 살아있다는 것을 잠자다가 확인하는데 뭐 그리 귀찮으세요?” 아차 싶었다. 성가시고 귀찮은 일에도 나름 의미가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의미를 찾는 것이 부활이 아닐까 싶다. 우리 삶 안에 많은 감사와 행복을 찾지 않고 불평불만으로 시간낭비를 하고 있다면 우리의 구원을 위해 돌아가신 주님의 죽음에 문을 닫아걸고 어두운 골방에 숨어 불안에 떠는 제자들과 같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는 부활 축제를 위해 사순 시기를 보냈다. 이는 부활의 생명은 사순절을 통해서만, 특히 성 목요일, 성 금요일, 성 토요일의 사건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 목요일에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거행 하시던 중 “이는 내 몸이다. 너희는 받아먹어라.” 하시며 빵을 쪼개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제자 중 한 명이 당신을 팔아먹고 대부분의 제자들이 그분의 죽음 앞에서 도망칠 것을 아시면서도 당신의 몸을 쪼개어 나누어 주신 그분의 사랑이 놀랍다. 성금요일에 주님께서는 온갖 수치와 모욕을 받으며 십자가에 스스로 달리셨다. 성 토요일에 주님께서는 당신의 몸을 죽음에 맡기시고 무덤에 묻히게 하셨다. 그 몸이, 당신의 몸을 쪼개신 성 목요일의 몸, “하느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하고 절규하며 숨을 거두신 성 금요일의 몸, 회칠한 무덤 속에 뉘어진 성 토요일의 몸이 바로 부활하신 주님의 몸이다.

 

이로써 예수님은 우리의 썩어 없어질 몸은 근본적으로 이웃을 위하여 내놓을 수 있는 몸이어야 한다는 것과 이웃을 위해 내 몸을 내놓을 때 부활의 빛을 내는 몸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육신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썩어 부패한 몸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다. 남을 위하여 죽어 없어진 몸만이 부활의 빛을 발할 수 있음을 부활을 통해 배운다. 자기의 몸을 쪼개고 비운 사람만이 부활의 경지에 든다는 말은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만큼 우리의 몸이 다른 이를 위하여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우리는 우리의 몸이 그리스도의 몸처럼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내놓을 수 있는 고귀한 몸이라는 사실이 큰 축복이 아닐까?

 

 

 

그리스도처럼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 자만이 부활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우리는 사순 시기에 “보았나, 십자가의 주님을” 이란 성가를 노래했다. 못 박히신 주님, 매달리신 주님, 못에 뚫린 손과 발, 뼈 드러난 손과 발, 창에 뚫린 심장, 거기서 흐르는 선혈, 싸늘하게 숨지신 몸을 보는 자만이 부활한 주님의 몸을 만나 뵐 수 있다고 노래한 것이다.

 

우리 주변의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 고통 받는 이웃, 병으로 아파하는 이들, 죄로 인해 아파하며 어려움에 처해 있는 이들의 슬프고 아픈 마음을 들여다보는 자만이 부활을 체험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의 이웃에게 손을 내밀며 다가가 그들을 위하여 우리의 몸을 쪼갤 때 우리는 ‘큰 사랑’을 세상에 선사하며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 놓는 것 보다 더 큰 사랑을 없다고 하신 예수님과 같이 참 부활의 기쁨을 맛볼 것이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내어놓고 쪼갤 수 있었던 것은 인간적인 결심이나 결단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적인 결심만으로는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끊임없이 아버지를 바라보며 그 뜻을 헤아리고 성령의 이끄심에 당신 자신을 맡기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도 다른 사람을 위해 우리 자신을 내어놓고 쪼개기 위해서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성령의 도우심을 청해야 한다.

 

부활 축제는 성령 강림 축제로 이어질 것이다. 부활의 삶이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실제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오시는 성령의 이끄심에 겸손하게 의탁하며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에 대한 희망을 저버리지 말아야겠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은 그 분으로부터 배워서 우리가 하는 실천 안에 그분이 살아 계시게 하는 것이니 이제 우리의 몸은 내 몸이 아니라 주님의 몸이다. 쪼개고 내어주고 십자가의 죽음을 실천하신 주님의 몸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은 이제 우리의 부활이기도 하다.

예수님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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