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7일 연중 제 33 주일
요즘 성당 마당에는 떨어져 뒹구는 낙엽이 가득하다. 한 때는 나무 잎이 주는 그늘의 시원함을 느끼며 살았는데 떨어진 낙엽은 어느새 치워야 할 쓰레기로 발 밑에 나뒹굴어져 있다. 떨어진 낙엽을 보면서 문득 ‘마지막’을 생각하게 된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싱그러움으로 팔팔했던 젊음이 어느새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는 옛 분들의 말씀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나이다. 마치 나무 끝에 달려진 낙엽 마냥 위태위태하다. 설상가상 요즈음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하느님의 나라가 정말 오는 것은 아닐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아시아대륙 중동에서는 전쟁이 사그라들 기미는 보이지 않고 전쟁 확산의 위험이 커지고 북 유럽에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에 북한의 적극적 가세로 더 혼란스럽게 흘러가고 있다. 교통의 발달로 세계는 좁아 졌다고 하지만 바로 이웃과의 거리는 더 멀어진 듯하고, 통신의 발달로 통교는 쉬워졌다지만, 서로의 간격은 더 떨어져 있는 듯하다. 또 사는 집은 커져 가지만 사람사이에 정은 좁아지고 멀어져 큰 집에 혼자 있는 집이 많아진 세상이다. 약한 사람인지라 불확실한 미래와 종말은 불안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오늘 복음이 전하는 세상 종말에 관한 말씀을 들으면 더욱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마르코복음13장 서두에서 로마 정치권력과 유다 종교권력이 결탁하여 드러났던 타락과 불의를 거침없이 비판하시며 종교권력의 상징인 예루살렘 성전의 몰락을 예고하셨다. 오늘 복음에서는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예수님의 말씀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13,31) 하고 말씀하신다. 곧 세상 권력과 부, 세속적인 유혹들에 맞서 하느님 나라의 희망을 결코 잃지 말라는 것이다. 타락한 기존 질서의 붕괴, 인간 욕망이 만들어낸 불안한 미래는 하느님 안에서 희망의 표지로 바뀐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위해 수난을 받고,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한 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히브리 15,13)
경제적 어려움이 닥칠까 각종 보험에 가입하고, 많은 돈을 저축해놓고도 좋은 일에 쓰는 것에 인색하며, 건강 걱정 때문에 건강보조식품을 챙겨 먹느라 신경을 쏟는 것은 자기만의 헛된 성전을 짓는 것에 불과하다.
사회적으로 출세하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능력을 키우고, 자기 이미지를 관리하고 자신을 알리는데 많은 시간을 쓰며, 자기 힘으로 안전한 미래를 확보하려는 것도 같은 일이다.
참 신앙인은 인간의 시선이나 기대, 세속의 가치나 재물에 집착해 헛된 성전을 세우지 않고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사람이다. 하느님만이 우리의 희망이다. 예수님의 삶, 죽음, 부활 안에 우리의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의 일을 하다가 죽는다면 이미 우리는 죽음을 넘어 부활하신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살아있는 참 성전이 될 수 있다. 하느님의 일만이 세상과 시간을 넘어 영원히 존속하기에, 우리는 늘 하느님의 사랑을 품고 그분의 눈으로 모든 피조물과 다른 이들을 바라봐야 한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기에 그분께 희망을 두며, 주님께서 부르시고 주시는 미래를 향해 길을 떠나야 한다. 하느님을 향한 순례는 사랑과 정의의 성전을 세우기 위한 모험이지만 우리가 꼭 걸어야 할 길이다.
무화과나무의 가지와 잎의 변화를 보며 여름이 오는 것을 알아채듯 (13,28) 영의 눈으로 시대 징표를 읽어, 나 자신과 교회공동체, 그리고 이 사회 안에 자리 잡은 헛된 성전을 과감히 허물 때 하느님의 ‘영원한 현재’ 를 살 수 있다. 이 길은 어쩌면 고통을 수반한 십자가의 길이 될지도 모르지만, 나와 이웃을 살리는 사랑의 길이고, 하느님과 함께 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두려운 종말이 아니라 영원한 희망의 선물로 다가올 것이며, 자유와 평등, 정의와 평화를 누리는 형제애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세상 사람이 늙어서도 죽고 어려서도 죽으며, 악한 이도 죽고 착한 이도 죽어, 사람이 죽었다는 소문이 날마다 내 귀에 들리는데, 너만은 죽지 아니할 줄로 아느냐? 어찌 남 죽는 소문은 내 귀에 들리고, 나 죽은 소문은 남의 귀에 들리지 아니하랴. 죽는 날을 미리 정할 길이 없으니, 사람이 한 번 죽으면, 즉시 천주께서 무궁무진한 화복을 판단하시는지라, 천하에 이러한 일이 다시없거늘, 꼭 살는지도 모르는 내년을 어찌 기다리랴.” –정약종의 <주교요지>교리서–
나뒹굴어진 낙엽을 보면서 마지막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지금, 제일 팔팔하고 싱그러운 오늘 사랑과 정의의 성전을 짓는 이 일을 내일로 미룰 수 없다는 각오가 우리에게 새겨 지기를 간곡히 바란다. 오늘이 우리 남은 인생 중 가장 젊은 날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