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5일 대림 3주일
해마다 12월이 되면 거리에 성탄 노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구세군의 자선냄비는 1891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되었다. 그때 도시의 빈민들이 먹을 것이 없자, 구세군의 ‘죠셉 맥피’라는 사람이 부두로 나가 근처 식당 주방에서 사용하던 큰 쇠솥에 다리를 연결하여 세운 뒤 거리에 내걸고 그 쇠솥위에 이렇게 써 붙였다. “이 국솥이 끓게 합시다.”이런 작은 나눔의 실천이 큰 기적을 이루어 성탄절에 많은 불우한 이웃을 도울 수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성탄절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자선냄비의 시작이었다.
군중이 묻는다.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요한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명료하다.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생각해 보면 옷 두 벌 가진 사람이라면 그리 넉넉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가진 것이 많아서 남는 것을 줘버리는 것이 아니라 빠듯하면서도 나보다 더 필요한 이들에게 내어 줄줄 아는 넉넉함을 먼저 배워야 한다. 먹을 것이 넘쳐 나 쓰레기봉투에 버리기 전에 이웃에게 나누지 못하는 우리의 궁핍한 마음을 먼저 버려야겠다. 등쳐먹지 말고 (속이지 말고) 정한대로만 받고, 힘 있다고 으스대며 거들먹거리지 않으며 만족하는 법을 배우라 외치는 광야의 소리는 우리와 상관없는 외침이 아니다.
가진 자들이 짜 놓은 판에 없는 이들이 내몰리는 이 암울한 세상에 하느님이시고 말씀이시면서 사람이 되신 주님께서 오신다. 이 혼탁한 시대에 어떻게 말씀을 증언하고, 어떻게 진리이신 분이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수 있을 것일지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분이 오신다 한들 그저 흥청망청 거리는 상업적 성탄에 묻혀 지나가는 의미 없는 축제가 될 뿐이다.
제대로 나누고 섬기는 삶을 살지 못하다가 행여 “독사의 자식”이라 혼쭐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저 말로만 “주님, 주님”하면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면 요한 세례자가 외친 “알곡은 당신의 곳간에 모아 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라는 질책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어떤 할머니가 장터에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젊은 사람이 "같이 가, 처녀!" 하고 소리를 친다. 할머니는 '별 미친……..'하고 무시하는데, 또 소리를 친다. "같이 가 처녀!" 괘씸한 놈 혼 줄을 내줘야지 하고서는 보청기를 끼고서 다시 들었는데, 그 청년이 소리쳤다. "갈치가 천 원!"
희로애락의 인생이지만 고단한 삶 한가운데에서도 끝없이 우리네 삶이 기쁨인 까닭은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분명 기쁨을 우리게 선물로 주셨다. 오늘 1독서에서 스바니야 예언자는 이렇게 밝힌다. “주 너의 하느님, 승리의 용사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시다. 그분께서 너를 두고 기뻐하며 즐거워하신다.”(스바 3,17) 또한 오늘 제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라”고 한다. 사실 필리피서는 바오로 사도의 옥중서한이다. 바오로가 감옥에 있으면서도 항상 기뻐하라고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분은 점점 커져야 하고, 나는 점점 작아져야 한다.”라고 했던 세례자 요한과 같은 겸손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던 철저한 겸손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승리의 임금이신 주님께서 또다시 우리에게 오신다. 슬프고 외롭고 맥이 다 빠져버린, 비참하고 억눌린 가련한 우리에게 또다시 힘과 용기와 희망과 기쁨을 주시기 위하여 오신다. 때문에 우리는 우울할 수 없고, 그래서 낙담할 수 없다.
하느님의 백성이며 자녀인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그분을 맞아들여야 할까? 야고보 서간의 저자가 부드럽고 낮은 톤이지만 힘 있게 들려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야고 1,22) 말씀이신 분이 가까이 오셨으니, 우리는 그 말씀을 받아들여서 입으로 고백하고 삶으로 증거 하는 참 신앙인이 되기를 기도해야 한다. ‘말씀’이시고 ‘기쁜 소식’이시며 세상을 구원해주실 분께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이 기쁨의 주일에 여쭙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국회의 문을 부수고 의원들을 체포하라고 명령한 이가 “그러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는다면 요한은 무엇이라 할지 자못 궁금한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