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11일 연중 제 28주일 Fr. 김두진(바오로)강론

10월 11일 연중 제28 주일

오늘 차가 너무 막혀서. 컴퓨터가 갑자기 다운돼서,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니까……. 사람은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럴싸한 핑계를 만들어내는 자기합리화의 기술자들이다. 오죽하면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속담이 생겼을까. 인간의 변명은 인류의 시작과 함께한다. 아담은 하느님께서 따먹지 말라고 하신 열매를 먹고는 “저 여자 때문에 먹었습니다.”라며 아내와 하느님을 동시에 탓했고, 하와는 “뱀이 속여서 먹었습니다.”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최초의 인간들부터 이미 ‘남 탓’과 ‘핑계’ 분야의 고수였다.

오늘 혼인 잔치의 비유는 지난 두 주일 복음 말씀 즉, 두 아들의 비유(마태 21,28-32)와 포도원의 소작인 비유(마태 21,33-45)의 주제를 발전시키고 있다. 오늘 복음에서는 스스로 구원에서 제외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관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하느님의 심판은 그리스도의 초대와 말씀에 대한 인간의 태도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는 주님의 날을 혼인 잔치에 비유한다.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25,6) 이렇게 주님의 날은 기쁨으로 가득 찰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내시고, 백성의 수치를 온 세상에서 치워 주실 뿐만 아니라 죽음을 영원히 없애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날에는 사람들이 “보라, 이 분은 우리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이분께 희망을 걸었고 이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25,9)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오늘 복음 역시 주님의 날을 혼인 잔치에 비유한다. 마태오는 이사야가 예언한 주님의 날, 곧 혼인 잔치가 이미 준비되었다고 선포한다. 하느님께서 당신 아들을 위한 혼인 잔치를 준비하신 뒤 사람들을 초대하셨다고 한다. 여기서 혼인 잔치의 신랑은 예수님이고, 그 신부는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이다. 교회는 새 계약으로 탄생한 그리스도의 신부이다. 하느님께서는 이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하신다. 그리고 그들에게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아먹게 하고, 풍성한 포도주를 마시도록 해 주신다.

하지만 임금이 아들의 혼인 잔치를 열고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아놓고’ 초대를 건넸건만, 사람들은 저마다 그럴듯한 핑계를 대며 거절한다.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심지어 임금이 보낸 종들을 때리고 죽이기까지 한다. 영문도 모른 채 거절당한 하느님의 심정은 어떠셨을까? 하느님은 기어이 당신의 축제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초대의 판을 완전히 바꾸신다. 놀랍고 감사하게도 하느님께서는 새로운 구원을 시작하신다.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그래서 종들은 거리로 나가 악한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 왔다.”(9-10) 이 잔치에 들어온 사람들은 자격증을 따서 들어온 사람도 아니고, 특별한 공로가 있어 초대받은 사람도 아니다. 그냥 지나가다가 얼떨결에 인생 최대의 잔치에 들어온 사람들이다. 이렇게 혼인잔치는 모두를 위해 열려 있다. 가톨릭의 언어로 보편적이다. 그렇게 해서 잔칫상은 온갖 사람들로 가득 찬다. 그냥 지나가다가 얼떨결에 인생 최대의 잔치상을 만난 셈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속해 있는 ‘교회’의 본모습이다. 교회는 성인군자들만 모인 고상한 클럽이 아니라, 길거리에서 스카우트된 온갖 종류의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여 하느님의 은혜를 공짜로 누리는 잔치판이다. 이런 사실은 예나지금이나 같은 모습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다가 ‘혼인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더니, 다짜고짜 그의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곳으로 던져버린다. 아니, 갑자기 길거리 캐스팅이 되었는데,  예복이 어디 있을까? 너무 야박한 임금님 아닌가 싶다. 혼인예복은 바로 ‘주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갈라 3,27)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지난날의 생활 방식에 젖어 사람을 속이는 욕망으로 멸망해 가는 옛 인간을 벗어 버리고, 여러분의 영과 마음이 새로워져, 진리의 의로움과 거룩함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 입어야 한다.”것이다.”(갈라 4,22-24) 아무 자격 없는 나를 거저 초대해 주셨는데, 잔치판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내 고집, 내 욕심, 내 옛 습관이라는 꼬질꼬질한 옷을 고집하며 “내가 잔치판에 와준 것만으로도 감사하세요.”라고 한다면 당장 쫓겨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했듯, 주님의 잔치는 우리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고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주는 은혜의 자리이다. 우리는 이미 그 잔치에 초대받은 ‘아무나’들이다. 그럼에도 “바빠서”, “피곤해서”, “저 사람 때문에”라는 그럴듯한 핑계를 대시는가? 다만 그분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이라는 예복 한 벌 차려입고, 뻔뻔하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마을 어귀에서 잡혀 온 또 다른 아무나와 함께 잔치상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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