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7일 연중 제 16 주일
성경은 우리를 생생한 이야기 속으로 안내한다. 여러 사건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과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성경에서 전하는 이야기들을 한층 돋보이게 하는 것은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들이다. 단지 하느님과 예수님뿐 아니라 다양한 모습과 특징을 가진 인물들은 성경을 통해 만나게 되는데,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기에 그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가 되기에,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며 깨닫게 된다.
오늘 우리는 복음에서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의 짧은 이야기를 듣는다.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루카 복음만이 전하는 내용이다. 요한복음은 라자로의 소생에 대해 언급 하면서 라자로와 마르타와 마리아가 살고 있던 동네가 예루살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베타니아라고 소개하고 (요한 11,1) 예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셨다고 한다. (요한 11,3). 복음서가 많은 내용을 전하지는 않지만, 이들은 분명 예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마르타는 활동하는 사람의 대표 격이다. 중요한 손님들을 초대한 자리에서 그들에게 최선을 다해 봉사하는 모습이다. 이런 마르타를 잘 표현하는 것은 봉사(디아코니아)라는 용어다. 반면에 마리아는 주위의 어수선함이나 분주함에 동요되지 않고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 말씀에 귀 기울인다. 그렇기에 마리아는 기도하는 사람의 대표이고 그녀를 표현하는 것은 “말씀을 듣는 것”이다. 이런 마리아가 “좋은 몫을 선택”했다는 예수님의 말은 초대교회에서부터 기도와 관상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것으로 이해되었고 교부들과 많은 성가 작곡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황동과 기도는 신앙생활에 꼭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서로 구분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활동 없이 기도만 하는 것도, 기도 없이 활동에만 전념하는 것도 올바른 신앙생활이 아니다. 어쩌면 마르타와 마리아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교회와 신앙인을 나타내는 하나의 표상일 수 있다.
기도가 바탕이 되지 않는 봉사는 쉽게 싫증난다. 반면에 구체적인 삶으로 드러나고 실천되지 않는 기도는 공허하다. 성경에서 주님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단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 실천 되는 것 까지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왜 말을 안 듣니?’하고 핀잔주는 것과 같다. 아이가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도 실천하지 못하기에 하는 핀잔이가 때문이다.
신앙인에겐 마르타와 마리아의 두 모습이 필요하다. 물론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기도에 바탕을 둔 활동과 봉사를 통해 표현되는 기도의 모습은 신앙인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집에 모신 인물은 마리아가 아니라 마르타였다. 성경에서 주님을 맞아들여 그분께 가까이 다가가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은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마르타는 정작 주님을 초대 해 놓고는 그분의 말씀을 보다는 자신의 일에 "바쁨"을 외치며 힘들어 한다. 오늘 복음은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하고 말한다. "분주하다"는 표현은 마르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에 비해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다고 전한다.
오늘 1독서인 창세기에서도 아브라함이 주님과 그분의 천사 둘을 손님으로 맞아들인 뒤 시중을 든다. 그러나 마르타와 아브라함의 다른 점이 있다면, 아브라함은 주님 곁에 머물며 시중을 들고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공손히 답하는 모습이지만 마르타는 시중드는 일에만 바쁘다. "그들이 먹는 동안 그는 나무 아래에 서서 그들을 시중들었다." 아브라함도 마르타처럼 주님을 맞아들였지만 시중 드는 일은 다르다. 아브라함은 마르타와는 달리 주님 곁에 머물며, 시중을 들고 그분 말씀을 들으며 공손히 답한다. 같은 맥락에서 오늘 복음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과 가까운 자리에 머물며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우리 모두는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완수하려는 교회의 일꾼들임을 밝힌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께 가까이 다가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며 주님과 함께 우리 일상 안에서 하느님과 이웃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비록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라도 거룩한 일이라 사도 바오로는 말하고 있다.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1, 24
덕의 모습은 한 가지가 아니다. 마르타와 마리아의 경우에서 보듯, 한쪽에는 분주한 섬김이 이고 다른 쪽엔 하느님 말씀에 대한 경청이 있다. 그런데 하느님 말씀을 경청하는 일이 분주히 일하는 것보단 먼저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신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교부 성 암브로시오는 오늘의 말씀을 이렇게 해설한다. “성실히 귀 기울여 듣는 일을 우리 몫으로 삼읍시다. 지혜에 대한 갈망이 그대를 이끌게 하십시오. 그것이 더 크고 완전한 일입니다. 시중드는 일이 바빠서 거룩한 말씀에 관한 지식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마르타가 열심히 시중들어 책망을 들은 것이 아닙니다. 다만 더 좋은 몫을 택한 마리아가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루카 복음 해설 7,85-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