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 말씀(마르 6,30-34)은 전교여행에서 돌아온 열 두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와 그동안의 활동을 보고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따로 외딴 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며 복음을 선포하고
병자들을 치유하느라 무척 지쳤을 텐데, 설상가상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제대로 먹을 틈조차
없었다고 복음은 전한다.
예수님과 사도들은 배를 타고 ‘외딴 곳’으로 떠난다. 외딴 곳은 사람이 살지 않거나 인적이 드문 곳, 때론 광야라고 불리는 곳이다. 당시 팔레스티나에 살던 대부분 사람들은
작은 마을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외딴 곳으로 떠나간 것은 창조의 아름다움과 고요 속에 삶의
여유를 찾고 주님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그들이 모인 이 외딴 곳은 기도와 가르침에
적합한 곳이기도 하지만,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는 기적의 현장이기도 하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떠나는 모습을 본 군중들은 육로로 함께 달려가 먼저 외딴 곳에 도착한다. 배에서 내리신 예수님은 목자가 없는 양떼와 같은 군중들에게 깊은 연민을 보이며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기
시작하신다. 양들에게 목자가 없다면 소심하기에 두려움에 빠지게 되고,
어리석기에 군중심리에 휩싸이기 쉬우며, 방향감각을 잃어 헤매거나 분열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나는 착한 목자다”(요한 10,14)라고 당신의 정체성을 밝히셨다. 주님은 목자시기에 양들을
만족하게 먹이고, 보살피고, 안전하게 돌보신다. 목자는 양들을 잘 알고 있고 양들도 자기 목자를 잘 안다. 여기에서
안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의미다. 목자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뒤를 따른다. 착한 목자 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으면서 끝까지 사랑하신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시편 23편)는 오늘의
화답송이다. 하느님처럼 너그럽고 자비로운 목자가 좋은 목자이다. 예수님처럼
온유하고 겸손한 목자가 좋은 목자다. 오늘 시편의 내용과 후렴은 언제나 들어도 흥겨운 노래다. 우리의 참 목자 예수님을 지칭하지만 참 닮고 싶은 모습이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두려울 것 없어라’, ‘걱정할 것 없어라’, ‘불안할 것 없어라’, ‘부러울 것 없어라’ 로 바꿔 불러도 기분 좋은 성가가 된다. 우리의 목자는 그런 분이시다.
하느님은 측은히 여기고 사랑하는 은혜로우신 분이시다.
그분의 사랑과 은혜로우심을 실천하는 사람 안에 하느님의 나라가 있다. 인간은 스스로 수양하지
않으면, 자유로워지지 못한다.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참다운
자유를 배운다. 그리스도신앙은 자기 한 사람만을 생각하는 속물근성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예수님에게서 참다운
자유를 배워서 하느님의 진리를 살게 해 준다. 이웃을 측은히 여기는 은혜로운 사람이 하느님 자녀의 품위를
유지 할 것이다. 2독서(에페 2,13-18)에서 사도 바오로는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느님과 가까워졌기에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라고 선포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평화이시기에, 우리는 “그분을 통하여 한 성령 안에서 주님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분 홀로 우리의 착한 목자이시니 그분의 인도로 참 행복의 삶을 살아가자. 아쉬울 것도, 두려울 것도, 걱정할
것도, 불안할 것도, 부러울 것도 없는 세상이 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주님의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배워 측은지심으로 우리의 품위를 지키고, 평화를 살아내자. 우리에게는 우리를 인도하시는 목자가 계신다. 주님은 나의 목자이시다. 그러니 아쉬울 것이 일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