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9일 연중 제 30주일 김두진(바오로)신부님 강론

 

10 29일 연중 제 30 주일

사랑, 얼마나 많이 얘기하고 사는가? 지금까지 사랑 이야기를 많이 해서 이런 생각이 드는지 몰라도, 세상은 사랑 타령인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자주 물어보는 질문은 한결같고 대답도 한결 같다. 얼마나 사랑해? 하늘만큼 땅만큼! 얼마나 보고 싶어? 하루 종일 보고 싶지! 오죽하면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떠오르는 당신 모습, 피할 길이 없어라하는 노래가 나왔을까? 따라서 사랑에 마음이 설레는 청춘이던, 사랑 얘기가 시들해 져 사랑에 관해 관심이 없을 것 같은 나이든 그래서 사랑은 여전히 중요하다.

 

오늘 복음을 보면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고 예수님께 질문한다. 당시 유다인들은 인간 삶의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중요한 것 248, 덜 중요한 것 365개 등 613개의 율법을 규정해 놓았다. 그리고 이것들이 인간의 삶을 의미 있고 보람되게 만드는 근본이라고 여겼지만, 자기들이 정해 놓은 율법의 중요도에 대한 기준이 너무 모호해서 때때로 자기들끼리 갑론을박하며 무엇이 더 중요한지 다툼이 있었다. 그런 문제를 예수님께 모호한 마음으로(시험하려고질문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7)라고 대답하시면서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놓치고 있던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히신다. 오직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수백 가지의 율법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이며 모든 율법의 근본이라고 강조하신다예수님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하신다이는 두 계명이 별개의 계명이나 서로 다른 사랑이 아니라 하나인 계명이요 같은 사랑임을 의미하는 것이다이런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통하여 잘 드러나고 있다즉 예수님의 구속행위는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이루어진 것이며또한 그렇게 예정하신 하느님께 대한 헌신적인 사랑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느님 사랑을 드러내는 길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이웃 사랑이다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두 사랑을 하나로 엮어 말씀하신다이웃 사랑이야 말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음의 증거다왜냐하면 근본적으로 사람을 연민하고 존중하며 이웃에게 헌신하고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또한 하느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이가 타인을 억압하거나 착취하고 무관심하거나 증오하기도 어렵다신앙이 없는 사람이라도 절대자를 경외하는 마음이 있으면 (하늘 무서운 줄 아는 사람이면) 사랑하는 행동을 한다.

 

1독서 탈출기에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주님의 마음이 드러난다. "너희는 이방인을 억압하거나 학대해서는 안 된다너희는 어떤 과부나 고아를 억눌러서도 안 된다." (22,20-21) 이방인고아과부는 부족 중심 사회에서 그들을 보호해 줄 울타리나 뒷받침이 되어 줄 언덕이 없는참으로 가련한 처지로 떨어진 이들이다주님께서 그들을 위해 당부 하신다. 이집트 노예생활의 과거를 상기 시키면서까지 그들이 이 규정을 마음에 새기길 바라신다. "너희가 그들을 억눌러 그들이 나에게 부르짖으면나는 들어줄 것이다나는 자비하다."(22,26)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존중 하는 마음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아 주면 좋겠지만, 주님은 그러지 않을 상황까지 미리 생각해 두신다. 그래서 '너희가 나의 말을 어기고 가난한 이들을 억압하면 당신이 가만히 계시지 않겠다.'고 하신다힘없는 그들 대신 내가 나서겠다는 이 말씀은 자비이신 하느님이심을 드러내 준다.

 

2독서 (1데살)에서 사도 바오로는 신앙이 어떻게 전승되는지 보여 준다. "여러분은 큰 환난 속에서도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여우리와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의 모든 신자에게 본보기가 되었습니다.”(1,7) 사도들과 제자들은 주님의 인격과 가르침을 직접또는 계시로 접한 사람들이다. 테살로니카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주님의 길을 가르치는 사도들을 주님의 대리자로 여기고 그들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다거기에 그치지 않고 배운 바를 충실히 지켜 그들 자신이 다른 신생 교회 공동체의 본보기가 된다이처럼 주님의 사랑과 진리는 그리 특출할 것 없는 이들을 통해 이웃에게 전해지고이를 전하는 이들의 인격과 가르침에 실려 또다시 전파된다사랑은 이렇게 전해지고 또 전달되면서 거쳐간 이들을 또 다른 그리스도로 변모 시키는 신비가 된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 주님 향한 우리의 뜨겁고 열렬한 사랑은 먼저 주님 곁에 머무르는 기도를 통해그리고 우리에게 보내 주신 이웃들에게 내미는 사랑의 손길을 통해 표현 된다그리고 비록 숨은 선행이라도 이를 보는 이들에게 "본보기"가 되어 그들이 "본받는 사람"이 됨으로써 이 사랑의 릴레이는 계속 이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율법 교사들처럼 자신의 믿음이 형식화 되어있지 않은 지 살피면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무관심의 마음에서 깨어나야 한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려는 것은 부족한 선행이나마 우리의 모습을 보고 누군가 '본받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것이며 언젠가 그 역시 또 다른 이웃에게 "본보기"가 될 것이니 아름다운 사랑의 릴레이는 계속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일을 중단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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