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1일 연중 제 26주일 김두진(바오로)신부님 강론

 

10 1일 연중 제 26 주일

예수님께서 두 아들의 비유를 들려주신다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을 하라.”고 하자 큰아들은 “싫다.”고 대답했지만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고작은아들은 “간다!”하고는 일하러 가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이 둘 가운데 아버지의 뜻을 누가 실천했는지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물으신다. 그들은 큰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실천했다고 대답한다. 처음엔 싫다고 한 큰아들보다 아버지의 뜻을 처음부터 따르고 실천까지 잘하는 자신들이 최고라고 생각 하던 그들이었지만, 예수님의 눈에는 그들은 작은아들이었고, 세리나 창녀들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죄인이었으나 요한의 말을 듣고 회개 했기에 그들이 큰아들이다. 예수님은 율법 조항의 문자적 의미를 철저히 지킬 뿐 아니라 그렇게 가르치고, 그 기준으로 사람을 단죄하는 종교 지도자들과율법에 의해 죄인으로 낙인 찍힌 세리와 창녀들을 대비시키신다죄인들과 동일 선상에서 비교되는 것부터 탐탁지 않은데그들 스스로 답한 비유의 결말이 자신들을 향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종교 지도자들은 속으로 불쾌해 한다.

 

나보다 못한 이들죄인들이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사실 때문에 오늘 복음은 우리 모두를 불편하게 만든다. 지난 주 복음 말씀처럼 사촌이 땅을 산 듯 배가 아프다우리 스스로가 잘한다고 생각해서 한 모든 일이 잘못되는 것 같아 불편하고분명히 잘못된 것인데 용인되는 듯해서 또 불편 하다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이 불편함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태도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둘째 아들을 좀더 들여다보면그는 포도밭 일을 하기 싫었을 것이지만, 아버지의 청을 거절할 수 없어일은 하기 싫으나 아들로서 본분을 다하고자 포도밭에 가겠다고 대답했을 것이다둘째 아들을 탓할 이유는 사실상 없다많은 경우 우리네 삶의 모습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네 인생 안에 하기 싫은 일이 더 많고그 일을 해야만 살아갈 수 있지만, 웬만하면 쉽고 하고 싶은 일만 하기를 간곡히 원하는 우리가 아닌가

 

세례나 성사서원이나 서품을 통해 엄숙하고 단호히 라고 대답한다. ‘믿습니다!’ ‘끊어버립니다!(세례성사) ‘신의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혼배성사) “순명 합니다.” (서품성사그러나 행동 보다 말뿐인 사람들이 더 많다. 마음은 간절하나몸은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예를 들자면신자들이 무언가를 부탁하면 ‘예’라고 대답 하지만, 마음속으로 많은 생각을 한다이것이 옳은 일일까, 형평성에 맞는 일일까? 너무 나를 쉽게 보는 것은 아닐까? 등 그냥 기쁘게 하면 훨씬 더 좋았을 텐데 그저 핑계만 찾는다. 사제인 나도 당시의 원로들처럼 작은아들이 될 가능성이 더 많다. 맏아들은 솔직하게 싫다고 말하였지만 생각을 바꾸어 일을 한다. 세리와 창녀들도 시대의 죄인으로서 솔직한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는 이들이었기 때문에 솔직하다.

 

 

본당신부가 신자에게 무슨 일을 부탁하면 싫다고 직설적으로 답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핑계로 거절하지만결국 일을 맡게 되는 것만 아니라 맡은 일은 열심히 해 내는 신자들 때문에 공동체가 빛이 난다솔직히 마음이 약해서인지 신앙심이 깊어서인지 모르지만이런 분들은 큰아들이 될 가능성이 적어도 나 보다는 많은 듯하다두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큰아들에게 서는 속상함에서 안도의 기쁨으로작은 아들에게 서는 든든함에서 서운함으로 바뀌지 않았을까처음부터 아버지께 든든함과 기쁨을 드릴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적어도 큰아들처럼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오늘 제1독서에서 회개와 구원의 가르침을 듣는다.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그는 자기 목숨을 살릴 것이다.(에제 18,27)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회개하여 주님의 뜻을 실천하면 산다는 것이다하느님께서 그의 옛 죄악에 연연하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신다반면 각별히 사랑하셨던 의인의 배반이 더 아프기 때문일까 아무리 의인이라도 마음을 바꾸어 불의를 저지르면 죽는다고 하신다그러니 돌아서되 방향을 제대로 잡고 돌아서야 한다주님을 향해진리와 사랑과 선을 향해 돌아서야 한다.

 

2독서에서는 우리가 지녀야 할 영적 유연함의 모범을 보여 준다.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필리 2,7) 우리는 모든 역사를 통틀어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전향만큼 다이내믹한 방향 전환을 알지 못한다. 하느님이 당신의 것을 모두 버리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음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신비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리 2,5)

하느님이 나약한 인간으로 오신 이 엄청난 신비가 가능한 것은 바로 이 마음 때문이다자비와 용서의 마음애간장이 녹을 정도로 절절한 사랑과 자애의 마음바로 우리 주님의 마음이다.

사랑하는 존재와 같아지기 바라고 그 때문에 모든 것, 신분과 가르침과 율법까지도 내려놓으실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기에 우리의 마음 안에 간직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 우리의 결단을 바라신다. 말로 그럴듯하게 꾸며 아버지를 속인 작은아들보다는뉘우치고 포도원으로 향했던 큰아들이야 말로 진정 하느님의 뜻에 더욱 합당한 사람이었음을 강조하시면서 비록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회개하고 오늘 우리에게 하느님의 포도원으로 발걸음을 돌리라고 하신다그러므로 우리가 그동안 여러 이유로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았다면, 예수님의 마음을 간직하고, 하느님의 뜻을 먼저 따르는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오늘 진리와 선과 정의는 고수하고사랑 아닌 것에서부터 떠날 수 있기를 간절히 주님께 청하도록 하자지금 있는 자리에서 사랑을 향해 돌아서서 주님을 만나도록 하자그분의 사랑을 찾아내고 그분의 사랑을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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