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대림 제 1 주일
사람의 인생은 어찌 보면 기다림의 연속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떠나간 자녀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식당에서는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며
경제가 나아지기를 기다리고, 결혼할 날을 기다리며, 마트에서는 계산대 앞에 줄을 서서 내 차례를 기다린다.
미사 시간을 기다리고, 병이 낫기를 기다린다. 신앙도 기다림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수천 년 메시아께서 오시기를 기다렸고, 신약의 하느님 백성들은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재림하실 날을 기다린다. 사실 우리네 삶에서 기다림이 아닌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는 우리가 이 지상에서 과연 무엇을 기다렸는가 하는 것이 심판의 기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참다운 기다림은 두 손을 놓고 막연히 넋 놓음의 기다림이 아니라, 진정 내 전 존재를 투자할 가치의 존귀함 앞에 자신의 현재를 부단히 사랑하며 가꾸어 나가는 기다림 이어야 한다. 현재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을 나누고 사랑하며 쓸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일 년의 가치를 알고 싶으면, 학점을 받지 못한 학생에게 물어보라. 한 달의 가치를 알고 싶으면, 미숙아를 낳은 어머니를 생각하라. 하루의 가치는 신문 편집장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한 시간의 가치가 궁금하면,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물어 보고, 일 분의 가치는, 열차를 놓친 사람에게, 일 초의 가치는 아찔한 사고를 순간적으로 피할 수 있었던 사람에게, 천 분의 일 초의 소중함은, 아깝게 은메달에 머문 육상 선수에게 물어 보라!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 어제는 이미 지나간 역사이며, 미래는 알 수 없기에 오늘이야 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Present)를 선물(Present) 이라 한다.
오늘부터 대림절이 시작된다. 교회의 달력으로는 새해의 시작이자 세속의 달력으로는 묵은 한 해의 마지막에 해당 하는 이 시기는 ‘이미’ 와 ‘아직’의 과도기적인 삶을 사는 우리 삶의 모습을 잘 대변해 준다. 즉, 이 세상에 예수님께서 ‘이미’ 나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지만, 우리에게 구원자의 모습으로 ‘아직’ 와야 하고, 하느님 나라는 ‘이미’ 이 세상에 왔지만, ‘아직’완성되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구원과 영원한 행복을 약속 받은 하느님의 자녀들이지만 ‘아직’ 온갖 고난과 욕망 안에 살고 있는 세속의 자녀들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대림절은 다시 한 번 일깨워 준다. 우리 시대는 우리가 대림절의 진리를 완전히 새롭게 배울 것을 요청하고 있다. 대림절의 진리는 다름이 아니라, 언제나 ‘이미’ 대립절이었으며 그럼에도 언제나 ‘아직’ 도 대림절임을 말한다.
이렇게 ‘이미’ 와 ‘아직’의 시기인 대림절은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시기다. “깨어 있어라 집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때일지, 새벽일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마르 13,35,37).
사실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이 만만치 않다. 직장을 가질 수만 있다면, 안정된 수입을 보장 받을 수 있다면, 원하는 학교에 다닐 수만 있다면, 승진 할 수만 있다면, 내 집을 가질 수만 있다면, 자녀들이 공부를 잘 할 수만 있다면, 안정된 노년을 살 수만 있다면, …. 이렇게 살아가면서 걱정거리는 끊이지 않고 계속 주어진다. 또 새로운 걱정거리는 그동안 이루어 놓은 것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다는 욕망을 우리 안에 심어 두기도 한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원하고 더 높은 지위를 원하며 더 많은 것을 향한 질주를 멈추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우리는 어두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기운을 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어두움에 놓여있지만 동시에 하느님께서 우리를 향해 비추어 주시는 자비의 빛을 받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의 부족함에 실망 하지 말고 우리 안으로 겸손하게 오시는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희망을 가져야 할 것이다.
새해는 ‘이미’ 시작 되었지만 묵은 지난 해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시기에 한 번쯤 여유를 갖고 우리 안을 들여다보도록 하자. 그리고 어두움 속에서도 빛나는 하느님의 자비를 안경 삼아 우리 주변을 둘러보도록 하자. 이렇게 ‘깨어’ 사는 우리에게 아기 예수님께서는 최고의 선물, 곧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실 것이다. 한 순간 순간을 진정 아끼고 사랑하며, 참된 진리의 생명을, 영원한 삶을 기다려야 한다.
오늘 제 1 독서의 이사야 예언자는 그분에 대해서 예언한다. 그분께서는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실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분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며,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고 한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스러운 광경일까? 우리는 참으로 많은 기다림을 체험하면서 살아간다. 이 체험은 언제나 새로움을 가져주며,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켜 준다. 그러나 기다리지 못하고 현실에만 안주하며, 보이는 것에만 급급하게 매달리는 사람에겐 더 이상의 새로움 이란 없다. 새로움이 없다면 변화된 삶을 꿈꿀 수 없고, 우리를 새롭게 하시기 위해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만나 뵐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얼마나 불행할까? 깨어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만이 주님을 만날 수 있다.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마르1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