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일 연중 제 22 주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수난을 첫 번째로 예고하시자 베드로가 나서서 그분을 만류한다. 이에 예수님께서 호되게 그를 꾸짖으신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수석 제자인 베드로가 한 순간에 "사탄"으로, 주님의 "걸림돌"로 전락한다.
하느님의 일과 사람의 일! 가톨릭교회 역사 안에서도 이런 일은 손에 꼽지 못할 정도로 많았다. 하늘나라의 열쇠를 쥔 교황이 되지도 않는 싸움을 위해 십자군을 징집하여 수많은 이교인들을 죽이는 것을 묵인하였고, 천문학자 조르다노 브루노 수사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 한다는 이유로 로마 한복판에서 화형을 당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자신의 주장을 공식적으로 철회하는 조건으로 풀려나기는 했으나 그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또한 프랑스 국왕은 자신들을 영국으로부터 지켜낸 영웅 잔 다르크를 영국인들에게 넘겨 종교재판을 통해 그녀를 화형에 처했다. 죄목은 여자가 남장을 했고, 하느님 계시는 사제를 통해 받아야만 하는데 직접 받았다는 것이었다. 이 모든 일이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데서 생겨났다. 교회의 권력으로 사람의 일만 생각하다 보니 역사에 길이 남을 실수를 하게 된 것이다.
사람의 일! 우리 대부분도 베드로처럼 사람의 일을 먼저 생각한다. 공부를 잘해야 하고, 돈을 많이 벌어야 하며, 건강해야 하고, 노후 설계도 잘해야 성공한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믿어왔다. 이렇게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 얻고 누리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인데 스스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죽으러 갈 것이라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 은 베드로의 상식으로는 절대 수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의 길을 택하지 않으셨다. 당신이 가야 할 길이 바로 하느님의 뜻이고 하느님의 일이라고 판단하셨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일과 사람의 일이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둘은 서로 반대편에 서 있다. 예수님께서 이어서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16,24) 사람은 일차적으로 자신의 욕망과 안위와 만족을 지향하기에 보편적 사랑을 추구하는 십자가와 공존하기 어렵다. 자아로 똘똘 뭉쳐 있을 때에 십자가란 더더욱 받아들이기 힘든 형벌이고 성가신 짐 덩어리다. 모든 인간은 자신과 십자가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요구 앞에 맞닥트린다. 신앙인이 아니어도 인생길에서 만나는 고통과 나약함, 불합리성 등을 피할 수 없다. 다만 십자가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다가올 뿐이다. 오죽했으면 인생은 고통의 바다라 했을까?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주님의 길에 들어선 우리 신앙인 역시 자신과 십자가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요구를 매일 매순간 마주하며 산다. 두 개중 하나를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하나를 버린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두개 모두 움켜쥔 채 어정쩡 가는 중이라면 예수님의 제자라 할 수 없다.
제1독서에서는 예레미야 예언자의 볼멘 항변이 들린다. "주님, 당신께서 저를 꾀시어 저는 그 꾐에 넘어 갔습니다." (예레 20,7) 예언자는 주님을 말씀을 전하면서 날마다 놀림감,
조롱거리, 치욕, 비웃음거리가 되는 처참하고 고달픈 신세를 한탄한다. 사람들은 그가 전하는 말씀이 제 구미에 맞지 않는다고 그를 무시하고 박해하기 일쑤이니 그는 늘 외롭고 위험스럽다. 모든 게 다 자기를 불러 힘든 짐을 떠맡기신 주님 때문이다. 그래서 예언자는 주님과 거리를 두고 그분 말씀도 전하지 않겠다고 힘껏 버텨 보지만, 주님 말씀을 속에만 담아두고는 견디어 낼 수가 없었다. 그렇다! 십자가는 피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십자가는 세속의 원리나 인간적 욕망을 거스른다. 베드로가 펄쩍 뛴 것도 그런 연유였다.
십자가와 자아 앞에서 고뇌하는 우리를 위해 사도 바오로는 제2독서에서 우리의 선택이 무엇을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하라고 한다. (로마 12,2)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면 여전히 사람의 일이 우선하는 자아의 노예가 된다. 반대로 시선을 하느님께 집중하고 있다면 우리에게 부여된 십자가를 지고, 하느님의 일을 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인간적으로 선택하고 싶지 않고, 여건이 된다면 피하고 싶은 것을 하느님 때문에 감내하고 있다면, 적어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걸림돌은 되지 않을 것이다.
십자가라는 말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십자가는 사람을 죽이는 형틀이었고, 수치와 버림받음, 저주와 모욕의 상징이다
그러니 십자가 앞에서 작아지고 움츠러드는 자신을 탓하지 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든, 억지로든 십자가를 진다는 자체를 칭찬하고 위로해 주면 좋겠다. 예례미아처럼 주님께 항변해도 좋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길에서 시몬의 도움을 받으셨다.
우리는 하느님의 일을 하면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 한다. 그러나 하느님께 의탁하는 순간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이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동안 우리가 확신하며 고집했던 사람의 일 방식을 내려놓으면 하느님께서 성령으로 더 채워 주시고 덤으로 영원한 생명의 길을 가르쳐 주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는 우리라면 사람의 일은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임을 알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한다. 주님은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