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7일 한국 순교자 대 축일 (본당의 날)
오늘은 한국 순교자 대 축일이며 우리 본당의 주보 성인들을 기리며 함께 기뻐하는 본당의 날이다.
오늘 복음에서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하고 이르신다. 날마다라는 말마디로 주님을 따르려는 사람에게 십자가의 길은 일상이 되어 버렸다. 이 말은 순간의 어려움을 겪는 것이 십자가가 아니라는 말도 되는데, 무엇보다 십자가는 예수님을 위하고, 그분께서 사랑하셨던 이웃을 향하는 삶에서 시작한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수없이 듣고 들어온 우리에게 십자가는 낯선 이들과의 연대, 불편한 사람과의 동행,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비판을 겸한 공동체적 삶의 지렛대가 되어야 한다. 물론 이 모든 것에 앞서 뜻이 달라도, 부족하고 어눌하더라도 이웃을 사랑하겠다는 다짐은 십자가를 짊어지기 전에 먼저 생각해야 할 신앙의 기본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길의 필수 요소로 십자가를 제시하시는데 사실 십자가는 유다인들에게 치욕스러운 형틀이었다. 그래서 십자가는 모든 사람이 피하고 싶은 최악의 고통을 비유하는 형틀이다. 동시에 예수님께 직접지고 가시고 당신의 죽음을 받아들였던 십자가 과연 얼마나 많은 이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러나 사실 우리는 크건 작건 저마다의 십자가를 지고 산다. 십자가는 자신의 부족하고 약하고 못난 점일 수도 있고 의도치 않게 닥친 사고나 시련일 수도 있으며 벗어나고 싶지만 평생 벗어날 수 없는 환경적 요인일 수도 있다. 인간은 꼭 신앙인이 아니어도 인생의 생로병사와 길흉화복의 과정을 겪으며 자기 십자가를 어느 정도 순응 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치게 되므로 십자가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자신의 십자가가 적응 되기도 하고 자기 포기, 혹은 자기 성장을 가져오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십자가의 특성은 날마다 져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나의 성장을 위해 허락하신 십자가는 며칠 지다가 내팽개칠 수 있는 취미나 오락이 아니며, 가볍게 목에 거는 액세서리는 더욱 아니라는 말씀이다. 매일 십자가의 고통과 어려움을 견딘다는 것은, 남이 보기에 아무리 하찮고 작은 십자가라도 나름 비장한 각오와 결심이 매일 새롭게 갱신되어야 가능하다. "오늘 하루만 견뎌 보리라"는 다짐이 필요한 것은 그만큼 어렵고 하기 좋은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 결심의 갱신이 무겁고 성가시고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십자가가 은총으로 완전히 습관의 경지에 이를 때까지 매일 그리고 날마다 지어 십자가와 한 몸이 되기까지 메고 가야 할 거룩한 은총으로 만들어야 한다.
제1독서에서 지혜서 저자는 십자가 즉, 고통, 단련, 시험 등을 통해 영원한 행복을 쟁취한 의인들의 영혼을 칭송한다.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지혜 3,9) 주님께 대한 신뢰와 신앙 때문에 목숨을 던지는 것은 어쩌다, 우연히, 표출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다. 고통 중에 그들이 쌓은 "신뢰"와 "믿음", "거룩함"이 그들 존재에 습관으로 스며들어 덕이 되어야 가능한 응답이다. 그런 의인들이 세상의 얄팍하고 얕은 눈에는 파멸과 징벌, 즉 불행이나 불운으로 비치지만, 실제로 그들은 엄청난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제 1 독서는 말한다. 그것은 주님을 신뢰하기에 진리를 깨닫고,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며, 은총과 자비를 받고, 주님의 돌봄을 받는 최상의 축복이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우리에게 확신에 찬 어조로 격려한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도 남습니다." (로마 8,37) 물론 녹록하지는 않겠지만, 고통과 시련의 얼굴을 하고 다가오는 어떤 십자가도 우리는 이겨낼 수 있다. 주님은 당신께 대한 사랑 때문에 최선을 다해 주어진 십자가를 지려는 우리를 결코 혼자 내버려 두지 않으시니 십자가는 나 혼자 지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를 받아 안을 때 우리는 예수님을 동시에 부둥켜안을 수 있다. 그러니 십자가 안에 계신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 주시고 살 길을 열어 주시니, 십자가와 주님과 나, 이 셋이 하나가 되면 넘어서지 못할 어려움은 없지 않을까 싶다.
순교는 믿지 않는 이들에게 한없이 미련해 보이고 바보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믿는 우리에게 순교는 주님의 의인들이 "날마다" 쌓아 올린 부단한 인내와 헌신의 열매 이기에 순교자들의 실천한 여정을 공경하고 경외한다. 우리가 날마다 지는 십자가는, 당장은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반드시 우리를 온통 주님으로 물들게 해 줄 것이다. 십자가는 우리가 진리 안에 거닐며 주님과 함께 사랑 속에 살게 해 주고, 은총과 자비를 누리며 주님의 돌봄 안에 머물게 한다.
오늘 예수님을 향해 오직 한마음으로 순교의 길을 걸었던 우리 본당의 주보 성인들인 한국 순교자들을 기억한다. 그분들의 삶에는 세상의 가치, 세상의 잣대도 있었지만 과감히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던 힘은 주님을 향한 열정이었다. 순교자의 후손 답게 십자가의 삶을 우리도 살아내도록 노력하자. 오늘 맞이한 한국 순교자 대 축일을 함께 축하하며 노래 하자! 장하다 순교자 주님의 용사여! 장하다 한국 순교자 성당, 주님의 용사들이요! 우리의 주보 성인 성녀들과 함께 본당의 날을 온 마음으로 기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