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4일 연중 제 2 주일
오늘은 연중 2주일이다. 성탄의 축제 기간도 지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에 제자를 부르셨다는 것을 알린다. 요한복음에서 첫 제자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면서 자기와 함께 있던 제자들에게 그분이 누구이신 지 알려주고, 그들이 그분께 가도록 길을 내준다. 요한은 자기 주변으로 모여든 제자들을 제 사람으로 만들어 세력을 과시하려는 헛된 욕망에서 벗어나 예수님의 첫 제자들이 될 “자기 제자 두 사람” (요한 1,35)을 그분께 소개한다.
요한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한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시다.’우리가 하는 신앙고백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을 온 인류의 죄를 없애는 대속적 죽음으로 여기고 예수님을 신약의 "해방절 양"으로 표현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제자들에게는 말로 이루지 못하는 충격이었으며 인자하신 아버지가 어떻게 십자가의 죽음을 허락하셨는지 혼란스러워 했고, 알아들을 수 없었다.
요한이 말하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라는 표현은 이사야 예언서에 나오는 ‘야훼의 종’을 가리킨다. “그는 온갖 굴욕을 받으면서도 입 한번 열지 않고 참았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가만히 서서 털을 깎기는 어미 양처럼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 (53,7). 이사야서의 이 말씀은 그 시대 유대인들의 해방절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유대인들은 해방절 날 어린 양 (탈출 12장 참조)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발라 재앙을 피했고, 가족들과 함께 잡은 양을 나눠 먹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진 ‘야훼의 종’과 같고, 우리를 위해 해방절에 성전에서 피를 흘리는 ‘어린 양’과 같다는 것이다. 또 세상의 죄를 없앤다는 말씀은 예수님의 일회적이고 보편적인 속죄행위를 표현하는 것으로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일치하고 머물러 있음으로 죄를 더 이상 짓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라오는 이들에게 단순히 “와서 보라.”(1,39)고만 하신다. 요한복음서에서 예수님께 온다는 것은 결코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분께 오는 사람은 빛(3,21), 생명(5,40), 결코 배고프지 않을 생명의 빵(6,35),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성령(7,37)을 얻는다. ‘오다’라는 말과 함께 ‘보다’라는 말도 신앙을 표현하는 용어로, 나타나엘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50절, 52절)과 같은 맥락으로 어떤 약속을 시사하는 것이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시다!”
그분을 보는 사람은 그분을 믿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영원한 생명”(6,40)을 얻는다. 예수님은 ‘와서 보라.’는 말씀으로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란 반문에 담긴 원의가 이제 실제로 이루어졌다. 예수님과 함께 머물며 무엇인가를 보고, 듣고 배우려는 뜻이 구체적으로 밝혀졌다. 즉 그들의 스승이던 세례자 요한의 가르침보다 하느님의 어린 양에게 와서 보고 들음으로써 더 알게 되었다. 예수님의 부르시는 방식은 율법이나 교과서의 이론을 머릿속에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전체를 존재의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체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제1독서는 어린 사무엘을 부르시는 내용이다. 주님께서 어린 사무엘을 네 차례에 걸쳐 부르시지만, 스승 엘리가 부르는 줄 착각하고 자다 일어나 세 번이나 성실히 엘리에게 달려간다. 이에 대해 성경 저자는 "사무엘은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드러난 적이 없었던 것이다."라고 그 까닭을 설명한다. 이 일이 세 차례 반복되자 엘리는 비로소 주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엘리의 도움으로 사무엘이 비로소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 3,18) 하고 주님께 합당하게 응답하면서 사무엘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가 된다.
오늘 연중 2주일인 오늘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을 듣는다. 하느님을 향하는 길에서 부르심을 받는 이들과 조금 먼저 걸어간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조금 먼저 걸어간 이들이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의 체험과 깨달음을 나눠 주고, 새로이 부르심의 길에 들어서는 이들은 어린 사무엘처럼 겸손히 순종하며 하느님을 알아간다. 같은 의미로 오늘 복음에 예수님과 함께 묵었던 안드레아는 자기 형 시몬을 예수님에게 데려온다. 예수님은 그를 눈 여겨 보며 시몬이란 이름을 게파로 바꿔 부르신다.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 사람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세례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중심으로 사는 새 사람으로 태어날 것을 약속하면서 그분의 말씀을 듣고 바뀐 삶을 살겠다는 의지로 부모로부터 받은 이름에서 우리의 세례명으로 바꿔 불리운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은 그분을 ‘하느님의 어린 양’, 곧 그분의 죽음으로 시작한다고 전한다. 그 죽음을 처음에 재자들이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이해가 깊어지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머물며, 그분이 사신 사랑, 곧 이웃을 위해 스스로를 내어주면서 자기 죽음을 실천할 때 이해가 되기 시작할 것이다. 신앙인은 자기만을 생각하지 않고, 예수님에 대해 알아듣고, 그분이 실천한 큰 뜻을 실천하는 이들이다. 신앙인은 그 실천 안에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메시아를 깨닫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실천을 하는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와서 보라!" 하신 예수님의 초대에 이제 우리도 "가서 그분의 사랑을 봐야"할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 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