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0일 대림 제 2 주일
버섯은 건강에 좋은 건강식품이다. 그런데 먹으면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위험한 독버섯도 있다. 버섯은 물 90%이상, 단백질 3%이하, 탄수화물 5%이하, 지방 1%, 미네랄 1%”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에 1%를 차지하고 있는 미네랄의 특성에 따라 버섯은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1% 성분 차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독과 약의 차이가 놀랍다.
이사야 예언서의 두 번째 부분인 40―55장은 바빌론 유배 말기의 삶을 전하면서 위로를 주제로 삼는다. 오늘 제1독서는 위로의 책의 시작 부분으로서, 예언자를 통하여 주어진 하느님의 말씀은 그분의 자비를 통하여 일어나는 위로와 변화를 보여 준다. 여기서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 자비의 힘을 강력한 자연의 모습에 비유한다.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거친 곳은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되어라.” 주님께서는 자비의 힘으로 우리를 위로하시고 변화시키신다.
복음서를 집필하며 예수님께서는 과연 누구이시며 우리는 그분을 어떻게 따를 것인가 고민하던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사야가 예언한 하느님의 자비를 통하여 일어나는 위로와 변화의 힘을 복음서의 첫 장에 인용한다. 마르코는 복음서 첫머리에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라고 밝히며, 이사야의 예언을 세례자 요한의 외침으로 전한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이처럼 세례자 요한의 임무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합당하게 맞이하도록 사람들을 준비시키는 일이었고, 그 방법이 회개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세례자 요한은 바로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했다. 하느님 자비의 힘으로 위로와 변화를 가져오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실 성령의 세례에 앞서 세례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푼 것이다.
그 시대 팔레스티나에는 여러 형태의 세례 운동들이 있었다. 율법은 지키기가 매우 까다로웠고, 성전 의례에 대한 유대교 당국의 요구는 지나치리 만치 엄격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죄인으로 판명 받고, 하느님으로 부터 버려진 절망감을 가슴에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 시대의 세례는 흐르는 강물에 사람의 몸을 잠기게 하여 죄를 씻는 의식이었는데 그것은 유대교 실세인 사제와 율사가 시작한 것이 아니라, 민중 안에서 일어난 일종의 신앙부흥 운동이었다. 세례자 요한은 그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한 사람들 중 한 사람이다. 그러나 요한의 세례는 다른 세례 운동가들의 세례와 달랐다. 다른 세례 운동가들이 단순히 죄를 씻는 의례로 세례를 행했지만, 요한은 세례를 주면서 회개, 곧 삶의 전환을 요구하였다.
요한의 세례는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고 결심한 사람이 일생에 단 한 번 받는 의례였다.
그렇다! 회개는 자기 삶을 바꾸겠다는 결심이다.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듯이 살던 사람이 하느님이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기 뜻대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회개다. 요한은 세례를 주면서 그 결심을 사람들에게 요구했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처럼 소돔과 고모라에서의 불행에서 빠져나오던 룻의 아내는 머리를 돌리는 바람에 (회두를 하지 않아) 소금 기둥으로 변한다. 몸은 멸망의 늪에서 빠져나왔을지라도, 과거의 사고방식이면 회개가 아니다. 과거의 사고방식은 결국 같은 행동으로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회개는 회두, 즉 생각의 전환 까지다.
주님께서 우리 한가운데 오시도록 죄의 골짜기를 메우고 고집과 자만심이 가득한 언덕들을 낮추어야겠다. 그러면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찬란한 영광과 위로를 마음껏 누릴 수 있을 것이며,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는 목자’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의 날은 도둑처럼 오지만, 모든 것을 새롭게 하는 날이기도 하다. 소박한 사람들은 회개의 메시지를 받아들이지만, 이 세상의 권력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거부한다. 재산이나 명예에 집착하는 사람, 자만에 빠져 있는 사람은 마음속에 장애물을 만들어 예기치 못한 순간에 종말을 맞는다. 그들은 놀라움과 공포, 절망과 후회로 가득한 종말을 맞게 될 것이다. 주님의 날을 잘 맞이하는 지름길은 회개와 신심 생활에 있다.
전체 성분의 1%의 미네랄 안에서의 차이가 독과 약이 되는 독버섯의 현실이 섬뜩하게 들리는 것은 바로 우리네 삶의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칼처럼 남의 마음을 후벼대고, 싸늘한 눈길이 남에게 모욕감을 주는 폭력이 되어 상처를 남긴다. 우리 마음 안에 있는 1%의 생각, 아니, 1%의 건전한 변화가 세상의 약이 된다. 1%가 99%를 바꾸어 놓는 이치는 비단 독버섯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모습이다. 단지1%의 편견이나 1%의 오만이 99%의 선함과 연민이 있다 손치더라도 그 1%가 나머지 99%를 뒤흔들어 놓기에 1%의 정화의 기적이 필요하다. 오늘 복음의 말씀으로 주님의 길을 닦는 것은 1%의 회개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 일 년이 지나간다. 오늘 제 2 독서에서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고 하는 말씀이 그리 멀리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지나간 세월이 하루 같이 흐르듯 세월의 무정함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오시는 주님의 길을 닦아야 하는 우리가 우리의 거친 곳, 험한 곳을 찾아내어 평지로 만드는 것은 어쩌면 1%의 회개 그리고 1%의 기적이 아닐까 싶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러한 것을 기다리고 있으니, 티 없고 흠 없는 사람으로 평화로이 그분 앞에 나설 수 있도록 애쓰십시오.”베드로 2서 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