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5일 주님 공현 대 축일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우리는 며칠 전 새해 첫날에 천주의 성모 마리아의 축일을 지냈다. 성모송의 첫 마디는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기뻐하라'고 한다. 그 기쁨의 이유가 주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러분 모두에게 “은총이 가득하신 여러분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기뻐 하시라”고 새해 인사를 올린다.
2025년은 을사년 푸른 뱀의 해이다. 뱀은 성경에서 별로 좋지 않은 짐승으로 나타나지만, 뱀은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결정짓는 능력을 지닌 지혜로운 동물로 여겨진다. 거기에 건강과 안전을 의미하는 푸른색이 더해진 만큼 2025년은 마음의 평화와 하느님의 말씀을 깊이 깨달아 통찰력을 키울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바캉스 계절에 부르던 노래가 왜 갑자기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별이 해변에만 쏟아지는가? 사실 별은 어느 곳이든 쏟아진다. ‘별이 유난히도 밝다.’라 할 때 그 유난하게 밝게 보이는 곳은 도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바닷가나 산속이다.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 아름다운 밤을 느끼고 싶으시면 환한 도심이 아니라 어두운 곳으로 가야 한다.
우리에게 오신 찬란한 별이자, 구세주 하느님을 뵙고 싶다면 휘황찬란한 곳, 화려한 곳이 아니라 소박하고 가난한 곳으로 내려가야만 한다. 주변 빛이 화려한 예루살렘에서는 사람들이 구세주의 별빛을 보지 못하게 했다. 늘 별빛을 예의주시하면서 어둡고 한적한 곳으로 내려간 동방 박사들이었기에 구세주의 별빛을 따라갈 수 있었다. 하늘에 빛나는 수없이 많은 별들이 그들을 위해서만 빛나지 않았을 터라 그들만 그 별을 볼 수 있는 특별한 재능이 있지 않을까 싶지만, "동방 박사들은 그들이 별을 보았기 때문에 길을 떠났던 것이 아니라 그들이 먼저 길을 떠났기 때문에 별을 보았다." (성 요한크리소스토모) 그들의 마음은 참 지혜에 열려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늘이 그들에게 보여 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동방에서 박사들이 베들레헴에 왔다는 말은, 하느님에 대해 알려줄 예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오셨지만, 이스라엘은 그분을 외면하였고, 먼 이방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그분을 경배했다는 말씀이다. 불행하게도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셨지만, 오히려 이스라엘은 그분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 후 그분의 가르침은 이스라엘 민족의 테두리를 넘어 이방인들에게 전파되고 받아들여진다. 이처럼 동방박사 (이방인)의 열망과는 달리 헤로데 에게는 다른 속셈이 있었다.
동방 박사들이 여정을 거의 마칠 무렵까지 헤로데는 잠들어 있었기에 혼란스러웠고 두려웠다. 동방박사들의 출현으로 역사를 뒤바꿀 새로움에 직면했을 때 혼란스러움 안에서 어쩔 줄 모르는 헤로데의 모습에서 앞으로 벌어질 예수님의 삶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어짐을 보게 된다. 변화와 뒤바뀜을 두려워하는 기득권자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변화와 새로움을 막으려 하는 것처럼, 변화와 뒤바뀜을 두려워하는 헤로데는 간교한 계략으로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 하기 때문이다.
아기 예수님의 구유 바로 그 옆에 십자가가 있다. 성탄은 빛의 축제다. 당연히 기쁨과 환희의 축제다. 그러나 그 빛, 기쁨, 환희는 영혼을 위한 것이지 단지 우리의 육체적인 기분을 흥겹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일 년에 단 한번 휘황찬란하게 잘 꾸며진 구유 앞에 무릎 꿇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 성탄절이 주는 외적인 매력에 휩싸이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이제 성탄의 기쁨을 우리 마음 깊이 간직하고, 또 다시 골고타 언덕이란 신앙의 정점을 향해, 예수님께서 지셨던 십자가란 우리 인생의 최종의미를 향해 다시금 먼 길을 떠날 순간이다.
언제까지나, 한없이 구유 앞에서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다. 이제 구세주를 뵌 기쁨을 가슴에 담고 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주님 공현’은 우리에게 또 다른 떠남을 요구한다. 세속적인 모든 재물에서 벗어난 깨끗한 마음의 순수한 황금, 예수님의 삶과 고난에 참여하기 위한 대가로 지불하게 될 자기 죽음의 몰약,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내맡기기 위해 기도하는 유황…이제 주님께 바치고 우리의 일상을 향해 떠나야 한다.
예수님 우리에게 오셔서 감사합니다. 저희의 황금과 몰약, 그리고 유황을 받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