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6일 연중 제 20 주일
우리말에서 ‘개’라는 단어는 참 묘하다. 요즘은 접두사처럼 쓰여 개이득, 개꿀처럼 최고의 만족감을 표현할 때도 쓰이지만, 누군가를 향해 비유로 던지는 순간 바로 싸움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모욕적인 단어가 된다. ‘강아지’라고 다정히 불러준다고 해도,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기분이 썩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는 예수님께 “강아지” 소리를 듣고도 상처받기는커녕, 이를 판 뒤집기의 기회로 삼아 최고의 칭찬과 구원을 쟁취해 낸 여인이 등장한다.
오늘 성경 말씀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하느님의 구원은 혈통이나 자격증 순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한없는 자비에 달려 있으며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사실이다. 제1독서(이사야서)에서 하느님께서는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리리라.”하신다. 원래는 특정 백성만 들어오던 구원의 문을, 주님을 따르고 계약을 지키는 이라면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모든 이들의 기도의 집’으로 하신다는 것이다.
제2독서(로마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 사정을 좀 더 쉽게 설명한다. 원래 구원에 초대받은 유다인들이 그 기회를 차 버리고 불순종하는 바람에, 그 구원이 얼떨결에 이방인들에게까지 열렸다는 것이다. 먼저 초대받은 이들의 트집 덕분에 뜻밖에 우리에게까지 구원의 은혜가 돌아왔으니,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참으로 ‘철회 없는 무한 보증’이라 할 만하다.
오늘 복음의 주인공인 가나안 여인의 상황은 매우 절망적이었다. 이방인이라는 신분적 한계에, 딸은 마귀가 들려 집안이 풍비박산 나기 직전이다. 여인은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찾아와 외친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이방인이었지만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 즉 메시아로 고백하는 완벽한 간청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여인의 외침을 듣지 않고 무시하신다. 설상가상 옆에서 지켜보던 제자들도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라며 투덜거린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아주 단호한 말투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하신다.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라며 끈질기게 매달린다. 그러자 예수님 입에서 듣기에 민망한 말이 나온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주는 것은 좋지 않다.” 아무리 좋게 설명한다하더라도 “이스라엘 백성은 내 자식이지만, 너희 같은 이방인은 강아지나 다름없는데 자식 먹일 빵을 강아지한테 줄 수는 없지 않느냐?”라는 뜻이다.
이 말을 들은 여인의 대답은 신앙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도 해학적인 반전을 만들어낸다. 화를 내거나 삐쳐서 돌아설 법도 한데, 여인은 아주 슬기롭게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씀드린다. 여인의 말 속에는 “강아지도 집안 식구 아닙니까? 주인이 식사할 때 상 밑에서 꼬리치고 있으면 떨어진 빵부스러기 정도는 주워 먹지 않나요? 제가 감히 ‘자녀의 빵’ 전체를 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저 식탁 밑으로 떨어지는 그 ‘부스러기 은혜’ 하나면 충분합니다!”라는 뜻일 것이다. 여인은 예수님의 자비가 얼마나 크신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 풍성한 은혜의 상에서 떨어지는 조그만 부스러기 하나만으로도 마귀 따위는 단번에 쫓아내고 딸을 살릴 수 있다는 절대적인 신뢰! 체면이나 자존심 따위는 딸을 살리겠다는 모성애와 주님을 향한 확신 앞에서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깐깐한 율법 조항이나 핏줄을 따지며 우쭐하던 바리사이들과 달리, 수치스러움마저 기도로 승화시킨 이 이방 여인의 담대한 믿음이 마침내 예수님의 기적을 끌어냈다.
옛날 카나의 혼인 잔치를 그린 어떤 명화를 자세히 보면, 예수님이 앉아 계신 화려한 식탁 밑에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가 얌전히 엎드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구원의 잔치판에서 순수한 혈통이나 완벽한 자격을 기준으로 따진다면, 우리 역시 그 식탁 아래에 앉아 있는 강아지 신세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 가나안 여인은 우리에게 큰 희망을 전해준다.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내는 것은 거창한 신분이나 완벽한 스펙이 아니라, 어떤 찬바람이 불어도 주님을 놓지 않는 ‘겸손하고 뻔뻔할 정도의 끈질긴 믿음’이라는 사실이다.
주님의 은혜는 계산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다. 내 얄팍한 자존심과 체면은 벗어던지고, “주님, 저 부스러기라도 좋으니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끈질기게 매달릴 때, 그 은총의 부스러기가 우리 삶의 모든 절망을 뒤엎고도 남는 구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