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일 연중 제18 주일
우리나라에는 예부터 밥상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문화가 있었다. 밥과 반찬을 갖추어 차린 상은 누구에게 올리느냐에 따라 이름이 달랐다. 아랫사람에게는 밥상, 어른에게는 진지상, 그리고 임금에게는 수라상이라고 불렀다. 또한 반찬의 수에 따라서 삼첩, 오첩, 칠첩, 구첩, 십이첩 반상으로 나뉘었고, 임금의 수라상에는 가장 풍성한 십이첩 반상이 올랐다. 또 혼자 먹는 상은 독상, 두 사람이 함께 먹는 상은 겸상이라고 불렀다. 요즈음은 혼자 먹는’혼밥’과 함께먹는 ‘겸밥’으로 나뉠 것이다. 흥미롭게도 ‘겸상’이라는 말에는 단순히 함께 식사한다는 의미를 넘어 함께 살아가고 함께 나눈다는 정신이 담겨 있다.
복음을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한 장면이 펼쳐진다. 세상의 참된 임금이신 예수님 앞에 차려진 상은 십이첩 수라상이 아니었다. 제자들이 가지고 있던 것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었다. 삼첩 반상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초라한 음식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말도 안 되는 부족한 양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계산은 우리의 계산과 다르다. 예수님께서는 그 적은 빵을 손에 드시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바치신 뒤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고, 제자들은 그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배만 채운 것이 아니라 무려 열두 광주리나 남았다. 부족함으로 시작했지만 풍요로움으로 끝났다.
오늘 복음을 이해하려면 바로 앞에 있었던 이야기를 함께 기억해야 한다. 헤로데 역시 잔치를 열었다. 그 잔치는 화려했다. 왕궁에서 열린 생일잔치였고, 최고의 음식이 차려졌을 것이다. 아마 십이첩 수라상보다도 더 화려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잔치의 마지막에는 세례자 요한의 잘린 머리가 은쟁반 위에 올려졌다. 권력과 욕심, 허영으로 가득한 잔치가 결국 죽음을 낳았다. 반면 예수님의 잔치는 광야에서, 풀밭 위에서, 가진 것이라고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는 생명이 살아났다. 굶주린 사람들이 배불리 먹었고, 절망하던 사람들이 희망을 얻었으며, 공동체가 하나가 되었다. 헤로데의 잔치는 많이 차렸지만 생명을 잃었고, 예수님의 잔치는 가진 것은 적었지만 생명을 나누었다. 이것이 하느님의 나라와 세상의 차이다.
복음은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기적은 예수님 혼자 이루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은 처음에는 계산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부족한 것을 탓하지 않으셨다. 있는 것을 가져오라고 하셨고, 제자들은 기꺼이 내놓았다. 또한 그들은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분배자가 되었다. 예수님께서 축복하신 빵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사람들이 바로 제자들이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엄청난 것을 요구하지 않으신다. 큰 재산이 없어도, 대단한 능력이 없어도 우리가 가진 작은 시간, 작은 정성, 작은 친절, 작은 사랑이면 충분하다. 그것을 예수님의 손에 맡길 때 기적은 시작된다.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외친다. “돈 없는 자들도 모두 와서 사 먹어라.” 하느님께서는 돈이 아니라 목마른 마음을 보신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나에게 오너라. 들어라. 너희가 살리라.”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양식은 빵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 주일 말씀의 식탁과 성체의 식탁에 초대받는다. 미사는 단순한 종교의식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배불리 먹이시는 잔치이다.
우리는 말씀으로 힘을 얻고, 성체로 생명을 얻는다. 그리고 다시 세상으로 파견된다. 오늘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식탁에 초대받았다. 세상은 경쟁하라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나누라고 하신다. 세상은 더 많이 가지라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가진 것을 내어놓으라고 말씀하신다. 세상은 계산하라고 말하지만 예수님은 먼저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사랑은 양으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기억된다. 어쩌면 그것이 오늘 복음의 오병이어 기적이 우리 시대에도 계속되는 모습인지 모른다.
오늘 이 미사에서 우리는 말씀과 성체라는 가장 귀한 양식을 받았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다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우리의 가정에서 따뜻한 말 한마디를 나누는 것, 외로운 이웃에게 안부를 묻는 것, 힘겨운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는 것,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것,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나누어야 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큰 희망을 선포한다.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9) 그 사랑을 받은 사람은 결코 빈손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오늘 이 성체성사의 식탁에서 배부르게 먹은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세상에 나누는 또 다른 제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럴 때 우리의 작은 나눔은 예수님의 손 안에서 커다란 기적이 되고, 우리 가정과 본당, 그리고 이 세상은 하느님의 풍성한 잔치로 변화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