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9일 연중 제 19 주일 Fr. 김두진(바오로) 강론

8월 9일 연중 제 19 주일

오늘 복음(예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신 기적)은 지난주의 복음(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이신 기적) 바로 다음에 나오기에, 둘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지난 주 복음이 예수께서 허기진 이들을 위해 베푸신 기적이었다면, 오늘 복음은 절망 속에 있는 이들을 위해 베풀어 주신 기적이다.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어 파도에 시달리는 배 안에 있는 제자들을 향해 가신 시간은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때로, 우리말 성경은 이 시간을 ‘새벽’이라고 한다. 새벽은 빛이 없어 사물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시기이지만 동시에 시간이 지나면 동이 트는 시간이다. 이 시간에 예수님은 자주 일어나 외딴곳으로 가서 기도하셨다.(마르 1,35 참조) 이스라엘 백성은 동틀 녘을 하느님이 어려움에 빠져 있는 자신들을 구원하러 오시는 때라고 믿었다. 오늘 복음에서 동틀 녘은 예수님의 제자들, 나아가 마태오 공동체가 처한 상황을 상징하기도 한다.

오늘 복음 속 제자들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체험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신난 제자들을 서둘러 배에 태워 캄캄한 밤중에 호수 건너편으로 보내신다. 게다가 거기는 낯선 이방인들의 땅이었다. 이 짧은 글에는  “너희끼리만 배불리 먹고 즐길 게 아니라, 저 낯선 곳에 있는 이방인들에게도 하느님의 은총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깊은 뜻이 숨어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다가 거센 풍랑을 만나 고생 할 것을 다 알고 계셨는데도 왜 그냥 보내셨을까? ‘소문으로 들어서 아는 예수님’과 ‘내 삶에서 직접 겪어본 예수님’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남한테 들어서 아는 믿음, 책으로 배워서 아는 믿음은 평소엔 그럴듯해 보여도 거센 파도 한 번 치면 쉽게 무너진다. 나중에 세상에 나가 예수님을 증언해야 할 제자들에게 필요한 건 그런 ‘3인칭 믿음’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사실 제자들이 고생하는 걸 멀리서 구경하며 즐기시는 분이 아니다. 제자들이 한계에 다다랐을 즈음, ‘새벽’에 호수 위를 걸어서 그들에게 다가가신다. 성경에서 ‘물(바다)’은 죽음과 공포를 뜻한다. 그 죽음의 바다 위를 짓밟고 걸어오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 한 분뿐이다. 즉,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장차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실 하느님의 신성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하지만 거센 바람과 파도에 정신을 팔린 제자들은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다!” 하고 비명을 지른다. 어제 저녁에 기적을 베푸신 분이 바로 눈앞에 오셨는데도 알아보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믿음이 약해진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꾸짖는 대신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신다. 여기서 “나다”라는 말은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이 모세에게 당신이 누구신지 알려주실 때 쓰셨던 “나는 곧 나다(I am who am) ‘에흐예 아셰르 에흐예’ (אהיה אשר אהיה)”라는 하느님의 진짜 이름이다. 예수님은 완벽하고 강한 믿음을 가진 사람만 찾아오시는 분이 아니라 풍랑 속에서 두려워 떨고 있는 약한 이들에게 오셔서, 당신이 어떤 분인지 알려주시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시는 분이시다.

이 때 베드로가 나선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예수님이오너라.하시자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걷는다. 대단한 신앙의 묘기다.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 빠져들기 시작한다. 빠진 이유는 분명하다. 베드로의 시선이 ‘예수님’에게서 ‘거친 파도’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우리도 주님만 바라볼 땐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 하다가도, 내 통장 잔고나 건강 검진 결과지를 바라보는 순간 “나 이제 죽었네.” 하며 기운이 빠져드는 것과 같다.

삶의 거친 파도 속에서 우리는 종종 스스로의 힘으로 제어할 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에 휩싸이곤 한다. 그러나 오늘 독서와 복음은 바로 그 두려움 한가운데서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주님께 온전한 믿음을 고백하도록 초대한다. 제1독서의 엘리야 이야기와 복음의 베드로 이야기는 깊은 닮은꼴이다. 고통과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당신을 만나도록 호렙산으로 엘리야를 부르신 하느님의 초대는, 역풍에 시달리는 베드로를 향해 “오너라.” 하고 물 위를 걸어오도록 부르신 예수님의 초대와 그대로 겹쳐진다.

주님은 거친 돌풍이나 흔들리는 지진, 맹렬한 불길 같은 세상의 소란 속에 계시지 않았다. 모든 파도가 숨을 죽인 뒤 찾아온 잔잔한 미풍 속 작은 속삭임으로 당신 존재를 드러내셨듯,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호수의 풍랑은 비로소 잠잠해졌다.

우리 삶의 바람이 거세질 때 필요한 것은 파도를 이겨낼 나의 완벽한 힘이 아니다. 풍랑보다 더 크신 주님을 바라보는 순수한 믿음, 그리고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하고 그분께 손을 뻗는 겸손한 고백이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세상의 소음과 불안을 너머, 우리 마음의 잔잔한 미풍 속에서 나지막이 건네신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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