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3일 연중 제 21 주일 Fr. 김두진(바오로) 강론

8월 23일 연중 제 21 주일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발걸음을 옮기신 ‘카이사리아 필리피’는 당시 로마 제국의 최첨단 트렌드와 거대한 권력이 집약된 초대형 도시였다. 기원전 2년경 헤로데 필립보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웅장한 신전을 지어 바친 이 도시는, 맑은 지하수가 솟아나는 웅장한 헬몬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산 중턱에는 로마 황제의 거대한 동상이, 그 맞은편에는 풍요와 다산을 약속하는 바알 신상이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돈과 권력의 냄새가 진동하는 그 화려한 건물 숲 한복판에서, 먼지투성이 옷을 입은 가난한 목수 출신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뜬금없는 물어보신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제자들은 세례자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등 당시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예언자들의 이름을 대며 분위기를 파악하지만 예수님의 진짜 목적은 여론 수집이 아니었다. 눈앞의 로마 황제 동상과 부의 상징인 바알 신상을 가리키듯, 예수님은 제자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핵심을 찌르신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 질문은 단순한 교리 시험이 아니었다. “저기 서 있는 권력의 황제와 부를 약속하는 바알, 그리고 아무런 세속적 힘도 없어 보이는 나중에서 너희는 누구를 너희 삶의 주인으로 선택하겠느냐?”는 인생을 건 질문이었다.

시몬 베드로가 앞으로 나와 고백한다.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황제 신전 앞에서의 이 고백은 세상이 말하는 성공 방정식인 권력과 재물을 포기하고 예수님께 자신을 올인하겠다는 위험천만한 신앙 고백이었다. 이에 예수님은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참 행복하다!”라고 극찬하신다. 이어진 예수님의 말씀이 흥미롭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다.” 즉, 베드로가 머리가 좋아서나 특별히 대단해서 맞힌 게 아니라, 하느님께서 성령을 통해 그에게 알려주셨다는 뜻이다.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그분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어렵습니까?”반문하며 하느님과 더불어 있지 않고, 하느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분의 뜻을 제대로 알 수 없다고 한다.(로마 11,33-36) 바오로 사도는 “내가 여러분에게 일러둡니다. 하느님의 영에 힘입어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예수는 저주를 받아라.’ 할 수 없고,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1코린 12,3)라고 한다. 따라서 베드로의 고백은 그의 인간적 능력이 아닌, 하느님이 주신 거룩한 선물(은총)이었다.

예수님은 이 반석 같은 신앙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고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고 약속하신다. 여기서 쉽게 오해할 수 있는 대목이 있다. 베드로가 천국 열쇠를 쥐었으니 이제 그가 교회의 진짜 주인이나 천국의 주인이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제1독서(이사야 22장)를 보면 그 해답이 명확히 드러난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시종장 세브나를 쫓아내고 엘야킴에게 다윗 집안의 열쇠를 맡기신다. 하지만 엘야킴은 왕이 아니라 히즈키야 임금을 모시는 궁내 대신, 즉 총괄 지배인(집사)이였다. 고대 사회에서 열쇠를 메고 다니는 이는 왕이 아니라, 왕의 명령을 받아 곳간을 열고 닫는 충직한 시종이었다. 따라서 베드로에게 주어진 열쇠 역시 자기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무제한 권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라 하늘나라를 성실히 관리하라는 ‘지배인 위임장’이었던 셈이다.

예수님은 이 믿음이라는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선언하시며 ‘하늘나라의 열쇠’를 약속하신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교회가 베드로라는 사람의 유약한 인성 위에 세워진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다 알고 있듯 베드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배반할 인물이다. 교회를 떠받치는 진짜 기둥은 베드로 개인의 능력치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에게 선물하신 ‘신앙 고백’ 그 자체다. 성령의 은총 없이는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라 부를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서 주님을 알아보고 고백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우리 손에 천국 문을 여는 열쇠가 쥐어졌다는 증거이다.

가톨릭교회는 교황님이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하늘나라의 열쇠를 간수하는 ‘첫 번째 시종’ 역할을 맡고 있다고 믿는다. 교황님 역시 교회의 주인이 아닌 하느님의 종으로서 성령의 인도에 따라 세상을 이끌어간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매일 자신만의 ‘카이사리아 필리피’에 서 있다. 통장 잔고라는 바알 신전과, 사회적 성공과 지위라는 황제 동상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숭배를 요구한다. 바로 그 순간 예수님은 슬며시 우리게 물으신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