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시여 저희에게 오소서!  

 

 

 

 

 

성령이시여 저희에게 오소서!

 

 

 

일본에서 발간된 유명한 책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는 물에 칭찬을 해 주면 결정이 예뻐지고 욕을 하니 결정 모양이 보기 흉측하게 변하는 사진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물도 좋은 기운을 알아 반응하는데 하물며 사람들이 좋은 기운을 모를 리 없습니다. 사람의 기운에서 좋은 기운으로 기쁨을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쁜 기운으로 어둠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늘 얼굴에 불만투성이고, 남의 이야기를 곧게 들을 수 없으며 불 만 불평으로 가득 찬 이들의 얼굴은 분명 슬픔의 얼굴이고 불만의 얼굴이며 못마땅한 얼굴이고, 자기 스스로 마음을 닫아 스스로에게 영 적 자학하고 사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하는 모든 말에는 에너지가 깃들어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누구이든 간에 또 무슨 말을 하던 간에 그 입에서는 말과 함께 스스로에게 또 다른 이를 변화시킬 에너지 (氣)가 뿜어 나가고 있습니다.

 

오늘 사도행전은 성령이 각 사람 위에 내려오시자, 사람들은 각자 자기 언어로 말을 하지만, 듣는 사람은 각자 자기 언어로 이해하였다고 말합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서로의 말을 알아듣게 되었다는 의미인데 이는 말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성령으로 마음이 열려 상호 간에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원활하게 의사소통 하는 사회는 서로를 존중하는 풍요로운 사회일 것입니다. 같은 의미로 모두가 앵무새 같이 똑 같은 말을 되풀이 할 것을 강요하는 사회는 폐쇄된 사회이며, 닫혀진 사회일 것입니다.

 

오늘 성령께서 우리게 오심으로 우리는 마음을 열고 서로 다른 모습을 인정하게 되었고, 다양하게 의사를 소통하게 되었으며, 풍요로움 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 풍요로움은 서로의 다름이 자유에서 나온 다양함임을 인정하고 마음을 열고 이해할 때 의사소통이 가능해지고, 자비와 용서가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고 전합니다. 긴장하고 닫혀있는 마음을 열고 오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 가운데 서십니다. 그리고 평화를 빌어주신 다음 당신의 숨 (영)을 불어넣으십니다. 두려움에 닫아걸고 있는 마음을 열어주신 예수님은 그들을 보내시며 ‘숨을 불어 넣으시며, 성령을 받으시오. 누구의 죄든지 그대들이 용서해 주면 용서받을 것이요,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는 것은 창세기 2장의 ‘하느님께서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숨결을 불어 넣으신 이야기’를 연상 시키며 이는 예수님의 숨으로 새롭게 태어났다는 의미입니다. 두려움 뒤에 숨어 잠가놓은 마음의 문이 예수님의 숨으로(성령으로) 열리면 용서가 가능해집니다. 그러므로 용서는 성령께서 베푸시는 기적중의 기적입니다.

 

오늘 전례의 화답송에서 우리는 “주님, 당신 숨을 보내시어, 온 누리의 얼굴을 새롭게 하소서.”하며 시편을 기도합니다. 하느님의 숨결인 성령으로 세상을 새롭게 하시어 자비와 용서를 실천하는 자비로운 얼굴로 좋은 기운(氣)이 가득한 세상이 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신앙인은 ‘용서받지 못한다.’, 혹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을 어떤 경우에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시대 유대교 기득권자들이 상투적으로 쓰던 말이었고, 그것에 반대하신 예수님께서는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죄인들과 어울린다고 비난하였지만 예수님은 하느님은 사람을 단죄하지 않으시고 버리지 않으신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도 원수까지 사랑하고, 자기에게 잘못한 이를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예수님은 가르치셨습니다. “여러분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 같이 여러분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시오.”(루가 6,36). 그래서 요한복음서는 예 수님의 복음 선포는 죄의 용서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1,29)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율법으로 사람들에게 죄의식을 심어주었지만 예수님은 그 죄의식에서 사람들을 해방시키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견하신 것은 당신이 하셨던 일 즉 교회가 죄의식에 잠겨있는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통하여 교회를 탄생시키셨고, 당신의 숨(성령) 으로 새로운 교회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하느님의 영이 살아계시면, 우리 주변 사람들은 자비를 체험할 것입니다. “아버지로부터 나오는 진리의 영”(요한 15,26)이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 삶의 양식이 달라질 것입니다. 배려와 용서 하시는 하느님의 숨결이 우리 안에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령강림을 해마다 기념하는 것은 하느님의 숨결, 진리의 영이 우리 안에 살아 계심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우리 서로의 차이를 풍요로움으로 보고, 자비하신 하느님의 시선이 우리 안에 살아 있음을 증명하자는 것입니다. 자비롭고 은혜롭게 우리 주변을 바라보는 숨결로 살겠다는 다짐하는 것입니다. 화답송에서 우리가 기도하였듯 하느님이 당신의 숨결을 우리 안에 보내시어 우리를 새롭게 하시도록 기도하는 날입니다. 다른 이들에게 우리의 뜻을 강요하면서 서로의 차이를 따지려 하지 말고, 우리 이웃의 말에 귀 기울이며, 우리의 차이를 다양함과 풍요로움으로 볼 수 있는 생명, 곧 하느님의 숨결이 우리 안에 살아계시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성령 받은 사람답게 서로의 얼굴을 바라봅시다.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칭찬, 우리는 서로에게 얼마나 칭찬하고 격려하고 사는지 반성하며 이웃이 우리의 경쟁자요,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고 스스로 마음을 굳게 닫고 있는 우리게 들어오시는 주님을 맞아들여 그분의 숨결로 새 삶을 살아내도록 합시다. 우리가 성령의 오심으로 생명을 전하는 사람답게 이웃에게 기쁨을 전하면 좋겠습니다. 서로를 격려해 가며 성령으로 하나 되어 기쁨을 살아내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합니다.

 

성령께서 강림하신 오늘, 성령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성령과 함께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날이었으면 합니다. 예수님께서 불어 넣으시는 생명의 숨결인 성령을 통하여 서로를 알아듣고 사랑하며 격려하고 배려하여 용서하는 우리였으면 합니다.

 

성령이시여 저희에게 오소서!

 

 

                                                                                                                                                                                                 – 김 두진(바오로)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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