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힘 십자가
신자들에게 기도를 부탁하면 "저 기도 못해요"라며 겸손하게 거절합니다. 기도를 말로만 하니까 말을 못하면 기도도 못한다고 생각을 하나 봅니다. 해서 "기도 못하면 신자가 아니지요. 기도를 잘해야 신자이지요."하고 말씀드리면 "개신교신자도 아닌데, 기도를 잘해야 합니까?" 하고 되묻는 분들도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혼자 기도하고 계실 때 제자들도 함께 있었는데, 그분께서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하고 물으셨다. (루카 9,18)
예수님도 기도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실상 자신이 누구인가를 사람들이 알게 되기를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했던 사람은 베드로였습니다. 그렇지만 이 고백마저도 확신에 찬 신앙고백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란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기름 부음을 받은 분이셨다는 것을 결코 부인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보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를 하늘의 구름 속에 나타났던 신비로운 인물인 사람의 아들이라 지칭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라는 엄청난 암시를 주시면서도 자신이 고통을 받을 것이고, 거부를 당할 것이며 죽임을 당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러한 비참한 운명은 오늘 제 1독서인 즈카리아의 환시 속에 나오는 창에 찔리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나를, 곧 자기들이 찌를 이를 바라보며, 외아들을 잃고 곡하듯이 슬피울 것이다." 즈카르야 (12, 10b)
사람들은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해서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분노하기도 하고 옳고 그름을 떠나 늘 편하게 내 중심으로 살려합니다. 팔이 안으로 굽듯, 자기 자신을 보호하고 자기만족을 살려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본능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큰일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를 버리고 대의를 따라 살거나 더 많은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예수님을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버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살신성인이라는 말로 요약하는 이 말의 뜻은, 거창한 일을 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가정 안에서 자기를 버리는 삶은 무엇인지,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서 자기를 버리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면 십자가를 지는 것은 그저 희생을 강요당하는 것도 아니고 힘든 일만 골라 하는 것도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세상의 행복은 십자가로 인해 생겨납니다. "어버이의 일생은 가이없어라." 하고 노래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의 자기 버림 없이 자녀들이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부모님들의 자기 비움과 자기 버림은 그저 강요된 희생이 아니라 기쁨으로 승화된 사랑입니다.
자신 만을 생각하고 자신의 만족만을 위해 살게 하는 것은 사탄의 유혹입니다. 세상을 혼자 사는 것도 아닌데 늘 혼자만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 아닐까요?
자신을 버리고 살아갈 때 나의 십자가를 보게 되고 그 십자가를 지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의 삶이라고 오늘 복음은 말합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기 위해, 큰 세상을 보기 위해 하느님의 뜻을 찾을 수 있어야 하는데 하느님은 기도를 통해서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복음은 우리게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라고 합니다. 매일매일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은 오히려 자기만족만을 고집하는 자신에게 있다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함께 사는 아내 혹은 남편 혹은 자녀들이 십자가가 될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작 봐야할 십자가는 다른 곳에 있지 싶습니다. 힘들면 무조건 십자가라고 보는 견해는 옳지 않은 것입니다. 십자가는 내 안에 있습니다. 내가 가장 큰 짐입니다. 해서 자기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유혹이 됩니다. 물론 제일 많이 부딪치는 사람이 가까운 남편, 혹은 아내이고 아이들이니까, 그렇게 생각도 들 수도 있습니다. 가족이 가장 편한 상대고, 쉬운 상대니까 쉽게 화도내고 투정도 부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환경이 십자가가 아니고 바로 내 자신이 가장 큰 짐과 멍에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자기를 버리는 것은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쁨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매일 양보하고 사는 것이 유쾌하지 않을 수 있지만 양보와 배려가 기쁨을 줍니다. 가정에서 매일 지고 사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겠지만, 져주고 사는 것이 더 재미있게 사는 방법일 수도 있듯 말입니다.
신앙인인 우리가 기도해야하는 이유가 분명해졌습니다. 기도를 통해 십자가에서 도망가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기도 안에서 매일매일 내 십자가를 보고 그 십자가의 힘을 얻습니다. 가정생활도 신앙생활도 십자가 없이는 행복할 수 없다는 이 역설을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우리가 매일 지고 가야 할 십자가는 기실 내 자신인데 우리는 남에게서 십자가를 찾고 있고 십자가도 아닌 것을 서로 삿대질 해가며 버겁게 지고 가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욕심 많은 내 모습, 겉멋만 드는 내 모습, 그저 좋은 것만 가지려는 오만한 모습, 그런데 거기서 십자가를 보지 못하고 당신 때문에, 너희들 때문에라며 서로에게 손가락질하며 에구 내 팔자야 하고 자신을 한탄한다면 잘못 짚어도 한참을 잘못 짚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잘못하면 남편이 변하게 해 달라고, 아이들이 변하게 해 달라고 쓸데없는 (빗나간 기도를) 하며 내 기도를 안 들어 주시는 하느님을 원망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알게하고 그분을 따르게 하는 십자가의 힘입니다.
김 두진(바오로)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