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서약
사랑의 서약이란 노래가 생각납니다. 그토록 바라던 시간이 왔어요. 하며 시작하던 노래는 많은 부부들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 할 때
노래방에서 즐겨 부르는 노래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 사랑의 서약을 한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그분의 복음에 따라 모든 죄의 근원인
악을 끊어 버리겠다고 굳게 서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서약이라는 말이 조금 부담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서약하면 꼭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지켜야 하는 법이 아닙니다. 사랑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무슨 일이든 누가 시켜서 하게 되면 왠지 모르게 하기 싫어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지라 사랑의 마음도 시큰둥해집니다.
생명의 하느님, 기르시며 돌봐주시는 하느님의 내리사랑을 잊고 지켜야 산다는 무서운 법칙으로 변한 것이 율법입니다. 율법의 핵심은 사랑인데 하느님, 사랑, 배려, 용서 따위의 높은 가치는 잃어버리고 그저 지켜야 한다는 메마른 마음으로 죄인을 만들어 내던 시절의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실 유대교의 계명은 무려 613개 조항이 있습니다. 그 중 248개 는 "……. 하라"는 명령이고 365개는 "…..을 하지 말라"는 금령입니다.
이 많은 계명은 시나이산의 모세에 의해 10계명으로 환원 되고 다시 이 계명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두 개의 계명으로 환원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선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의 뜻을 찾으라고 명하시고 그분도 그렇게 사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인간을 위하시는 분이시기에 원수도 죄인도 사랑하라고 명하시며 당신 아들 예수도 스스로도 그렇게 가르치시며 사셨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나의 이웃인지를 따지는 것보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선포하신 황금률은 우리게 중요한 것을 가르칩니다.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은 죄 많은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바리사이의 마음과 죄 많은 여인의 마음으로 오늘 복음을 읽어보았습니다.
먼저 바리사이의 시각에서 보면 그녀는 분명 잘못을 저지른 죄인입니다. 죄 많은 여인이 예수님의 발을 닦아드리는 모습을 본 그 들은 충분히 투덜거릴 만합니다. 저렇게 죄 많은 여인이 발을 만지고 발을 닦아 주는데,……… 그 훌륭한 예언자라는 당신이 저 여자가 누군지 모른단 말인가?
그들의 닫힌 시각은 그녀의 죄(율법)에 집중한 나머지 그 뒤에 숨어있는 사랑을 보지 못합니다.
마치 잘못한 사랑스런 딸이 눈물로 용서를 청하는데, (사랑을 간절히 바라는데) 옳고 그름만 따져 딸을 용서하지 못하는 고집스런 아버지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예수님은 죄인들과 어울리심으로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신다는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남을 판단하는 것은 남에게 판단 받을 각오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판단하면 나도 누군가로 부터 판단을 받습니다.
해서 긴장하고 실수 안하려하고 그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안에 나를 가두어 둡니다. 이런 악습의 고리는 내가 끊어내야 합니다. 그러나 서로 "네가 먼저 변해!"하면서 상대방에 손가락질 하는 것만 되풀이 하고 있으면 "하느님," "사랑," "배려," "용서" 등의 신앙의 이상은 잃어버린 채 옳고 그름에 갇혀 서로의 손가락질에 분노하며 억울해하는 삶이 될 것입 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는 죄를 용서 받았다." 예수님의 발을 닦아드린 행위를 보속으로 보시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 때문에, 오랫 동안 죄의 멍에에 짓눌려온 그녀의 무거운 과거 때문에, 아니 회개하는 죄인을 사랑하시는 사랑 때문에 조건없는 용서가 가능해졌습니다.
죄 많은 여인의 마음으로 복음을 읽어보았습니다. 쳐다보기도 싫은 지나온 과거, 생각조차 하기 싫은 과거의 삶에서 제발 빠져 나왔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분을 보는 순간 눈물이 앞을 가려 할 말을 잃습니다. 그저 눈물만 쏟아져 나올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 다. 용서를 청할 기운도, 아니 그럴 마음도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저 아픈 과거가 너무 아려와 눈물만 나옵니다. 아무 말도 못합니다.
고해소에 앉아 고백성사를 들을 때, 아무런 말도하지 못하는 분을 만날 때, 그저 펑펑 쏟아내는 눈물을 보고 있을 때 사제가 할 수 있는 말이 무엇이 있을까요? 그럼에도 이것은 잘못이고 저것은 옳은 일이니 이렇게, 저렇게 살라고 말할 수 있는 사제가 얼마나 될까요? 그저 펑펑 우는 마음에 함께하고 상처와 고통에 다가서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나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의 죄를 사합 니다."
예수 성심 성월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달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배워 살아내는 성월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찾을 수 있다면 누가 무엇을 몇 번을 잘못하고, 누가 무엇을 잘하고를 따지기 앞서 스스로 받은 상처를 먼저 치유시키려는 사랑의 마음이 먼저가 아닐까요? 맑고 높은 하늘을 보면서, 푸르른 잔디 위에서, 점점 짙어가는 녹색의 자연 속에서 야외 미사를 봉헌하면서 높고 크신 예수님의 마음을 배워 서로 사 랑하고 기쁨을 사는 공동체였으면 합니다.
김 두진(바오로)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