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지르러 왔다!

 

 

 

 

 

불을 지르러 왔다!

 

 

생식이 건강에 좋다고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만, 여름철에는 생식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닐 겁니다. 식재료가 상하기 쉬운 여름철에는 물도 끓여 마시고, 음식도 익혀 먹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동물과 사람의 차이점 가운데 하나는 사람은 불을 이용할 줄 안다는 것일 겁니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불을 무서워하지만 사람은 불을 사용하여 문명을 발전시켜왔습니 다. 음식을 익혀서 먹고, 제련을 통해 금속을 얻어으며, 또 그 얻은 금속을 불로 녹여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 무기나 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만드는데 이용했습니다. 또한 불에서 나오는 열로 추위를 이겨내며, 에너지도 얻고, 불에서 나오는 빛으로 어둠을 밝히는 지혜를 살아가는 유일한 존재가 사람입니다. 불을 일으키려면 땔감이 필요합니다. 적당한 공기도 필요합니다. 따라서 불을 일으키려면 노력이 필요합니다. 불은 움직이며 빛과 열을 내기에 살아있는 존재입니다. 그 불에는 힘이 넘쳐납니다. 많은 종교의식에서도 불은 사용되었습니다. 불을 피워놓고 그 주위에서 노래하며 춤추는 의식은 원시종교에서 흔희 볼 수 있는 의식입니다. 기실 우리 문화에서 제사 지내며 지방을 태워 하늘로 올려 보내는 의식도 불을 이용한 것이고, 예물인 짐승을 잡아 불에 태워 하늘로 연기를 올리는 의식도 이스라엘 백성의 구약 제사였습니다. 우리도 초에 불을 켜고 기도합니다.

 

불은 성령의 활동이 지닌 변화의 힘을 상징하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엘리야는 자신의 기도로 카르멜 산 위 제물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였습니다. 이 불은 닿는 것을 변화시키시는 성령을 상징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리스도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루카 3,16) 분이시라 선포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 분께서 오늘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루카 12,49)

 

성령께서는 오순절 아침 ‘불꽃’ 모양의 혀들로 제자들 위에 내려 오셔서 그들의 마음을 채우셨습니다. 영성적으로 볼 때 이 불은, 성령의 활동을 가장 잘 표현하는 상징의 하나로 간직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1테살 5,19).

 

오늘 1 독서는 ‘비운의 예언자 예레미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을 돌려 하느님을 맞아들여, 하느님의 눈길로 세상을 보고 그분의 자비를 살아내자고 외치던 예레미야 예언자에게 죽음을 내리자 외칩니다. "그가 이따위 말을 하여, 도성에 남은 군인들과 온 백성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사형을 받아 마땅합니다!" 예레미아 38,4

 

나보다 앞서 나가는 사람에 대한 질투, 다른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는 모함. 그리고 너 같은 찌질이는 나와 함께 있을 수 없다는 식의 왕따가 판치는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지 싶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올바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은 진부 합니다. 몰라서 실천 못하는 사람들이 없기에 그렇습니다. 특히 교육수준도 높고, 남보다 뒤지기 싫어하는 우리들이 몰라서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실천을 안하고 있다면 무엇부터 해야겠습니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그 말씀을 살려고 했던 예레미야 예언자는 힘겹게 삶을 마쳐야 했습니다. 마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십자가 위에서 삶을 마감하셨던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올바로 산다는 것은 이래서 어렵습니다. 늘 십자가가 보이고 넘어야 할 벽들이 늘 우리를 가로 막고 있습니다. 습도도 높고, 불쾌지수도 높은 때에, 다른 사람의 말을 끈기있게 들어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세상은 더불어 사는 곳임을 기억하고, 나만의 공간이 아니라 우리의 공간임을 자각한다면 우리의 삶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루카 12,51

초기 신앙공동체는 평화롭지 못했습니다. 박해로 인해 가정 공동체가 분열되고, 박해로 가족끼리 반목하였으며, 예수님이 그 시대 유대인으로부터 미움을 받아 돌아가셨듯, 그리스도 신앙인들도 가정이 분열되고 서로 반목하는 아픔을 겪으며 신앙 때문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박해로 목숨을 잃어야만 했던 사람이 20,000명에 이르렀습니다.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 인간의 혈연보다 우선이였기에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든지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입니다.”(마르코 3,35). 라는 말씀처럼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인연은 형제, 자매, 혹은 아버지, 어머니라는 혈연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자녀 되어 살겠다는 굳은 신앙의 인연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분열과 반목을 겪으면서 싸워 이기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말씀에 충실하다가 그 충실함 때문에 발생하는 분열과 반목을 참고 견디는 삶이어야 합니다. 오늘의 이 복음 말씀을 잘못 알아들어, 분열과 반목이 있어야 더 그리스도적이라 생각 하는 분도 더러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 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은 분열과 반목을 자초하거나 조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오셨습니다. 성령의 불은 하느님을 알게 하고, 그분을 사랑하는 열정으로 인도합니다. 내 마음에 있는 성령의 불길이 활활 타올라, 성령께서 나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 변화시키시며 정화시키심을 기억합시다. 하여 사랑의 불, 성령께 진심으로 기도합시다. 우리를 억누르는 이기심과 걱정 그리고 집요하게 달라 붙는 죄를 벗어 머리고,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

 

                                                                                                                                                                                                       김 두진(바오로)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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