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 바뻐!

 

 

 

 

 

 

바쁘다 바뻐!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아실 겁니다. 열심히 일하는 개미는 욕을 먹고, 먹고 놀기 좋아하는 베짱이가 오늘 복음에서는 칭찬을 받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복음은 우리가 잘 아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이야기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마르타가 오히려 야단을 맞고 가만히 앉아 있는 마리아는 칭찬을 받습니다. 일 열심히 하는 것도 욕먹을 짓이라면, 성당에서 주일 마다 땀 흘리며 점심을 준비하시는 모니카회원들과 설거지를 도맡아 하시는 이벽요한회원들은 이 일을 당장 때려 쳐야하지 않을까요? 예수님도 마르타가 준비한 식사를 맛있게 드셨을 텐데 왜 마르타를 구박하셨을까요?

 

그전에 제가 어느 집에 식사를 초대 받아 간적이 있었습니다. 저를 직접 초대하지 않은 형제님은 저와 앉아서 내 이야기를 경청하는데 비해 정작 직접 초대해 주신 자매님은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습니다. 이것저것 챙길 것이 많아서, 식사도 함께 하지 못하고 그저 시중만 들다가 얼굴만 잠깐보고 돌아온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저녁식사는 맛있게 먹었지만 뭔가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돌아온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집에 모신 인물은 마리아가 아니라 마르타입니다. 성경에서 주님을 맞아들여 그분께 가까이 다가가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은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마르타는 정작 주님을 초대 해 놓고선 그분의 말씀 보다는 자신의 일에 "바쁘다 바뻐!"를 외치며 힘들어 합니다. 오늘 복음은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하고 말합니다. 그에 비해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마리아는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1독서인 창세기에서도 아브라함이 주님과 그분의 천사 둘을 손님으로 맞아들인 뒤 시중을 듭니다. 아브라함은 주님 곁에 머물며 시중을 들고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공손히 답하는 모습이지만 마르타는 시중드는 일에만 바쁠 뿐입니다. "그들이 먹는 동안 그는 나무 아래에 서서 그들을 시중들었다." 아브라함도 마르타처럼 주님을 맞아들였지만 시중을 드는 일은 달랐습니다. 마르타와는 달리 아브라함은 주님 곁에 머물며, 시중을 들고 그분 말씀에 귀 기울이면서 공손히 답할 줄 알았습니다.

 

오늘 복음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과 가까운 자리에 머물며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루카 복음은 씨 뿌리는 사람들의 비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 루카 8,15 그렇습니다. 착한 마음으로 듣는 몫을 선택한 마리아는 마르타의 분주함 보다 좋은 몫이라는 뜻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좋은 몫, 곧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며, 간직한 인물이었음을 밝힙니다.

 

언제나 하느님과 하느님의 일에 골몰하기. 이것이 우리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되어야 하고, 흔들림 없이 마음으로 좇는 길이어야 합니다.

다른 곁길은 아무리 중요해 보이더라도 부차적인 것으로, 더 낮은 길로, 그리고 당연히 위험한 길로 여겨야 합니다. 마르타와 마리아 이야기는 이런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의 전형을 보여 주는 성경의 가장 아름다운 예입니다. 마르타는 주님과 그분의 제자들을 시중드는 매우 거룩한 봉사를 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예수님 발치에 앉아 그분의 영적 가르침에 온 주의를 기울였고 그 발에 입 맞추며 진실한 믿음의 기름으로 그 발을 적셨습니다. …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고 하신 주님께서는 마르타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 안 하셨지만 그를 비판하는 기색을 조금도 비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지만 마리아를 칭찬하심으로써 마르타를 그보다 낮은 단계에 두셨습니다. 또 마리아가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심으로써, 마르타의 몫은 남에게 빼앗길 수 있는 것임을 암시하셨습니다(요한 카시아누스, <담화집, 1,8>).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우리 모두는 주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완수하려는 교회의 일꾼들임을 밝힙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께 가까이 다가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며 주님과 함께 우리 일상 안에서 하느님과 이웃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비록 힘들고 어려운 일 일지라도 거룩한 일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콜로새서 1, 24

 

우리의 일상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를 섬기는 그분의 일꾼이지만, 우리 일상 안에서 "바쁘다 바뻐!"를 외치며 살아갑니다. 하느님의 뜻 보다는 일상의 욕심으로 분주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선택 하였다."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분주하다면 분명 주님의 일은 아닐 겁니다. 주님의 발치에서 착한 마음으로 들을 때 인내의 행위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 되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어떤 몫을 선택하시렵니까?

 

덕의 모습은 한 가지가 아닙니다. 마르타와 마리아의 경우에서 보듯이, 한쪽에는 분주한 섬김이 있고 다른 쪽엔 하느님 말씀에 대한 경청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 말씀을 경청하는 일이 분주히 일하는 것보다 먼저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은 것이다." 그런즉 … 성실히 귀 기울여 듣는 일을 우리 몫으로 삼읍시다. … 마리아처럼, 지혜에 대한 갈망이 그대를 이끌게 하십시오. 그것이 더 크고 완전한 일입니다. 시중드는 일로 바빠서 거룩한 말씀에 관한 지식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 마르타가 열심히 시중들어 책망을 들은 것이 아닙니다. 다만 더 좋은 몫을 택한 마리아가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암브로시우스, 『루카 복음 해설』, 7,85-86).

 

이 자리를 빌려 맛있는 점심 때문에 바쁨으로 땀 흘리며 고생하시는 모니카회원들과 더위에 설거지로 바쁘신 이벽요한회원들에게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김 두진(바오로)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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