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st Do It!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Just Do It!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지난 주 독립기념 연휴 때 시카고에서만 60건의 총기 사고가 있었다는 보도를 뉴스를 통해 들었습니다. 전쟁이 나도 이렇게 시끄러울까 할 정도로 폭죽을 터트리면서 기뻐하는 나라의 경축일에 오히려 많은 이들이 총기로 죽거나 다치는 일이 아이러니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그전에 디트로이트에 있는 피정 집에 살 때였습니다. 매주 월요일 저녁마다 남녀 알코올 중독자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평소에 반갑게

인사하고 서로 웃으며 얘기를 나누던 양반이 얼굴에 큰 상처를 입고 나타났습니다. 그리고는 차가 없어서 집에 가야 하는데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답니다. 그 양반 집이 어디냐고 물어보니 이곳 피정 집에서 먼 곳은 아니었습니다만, 동네가 아주 험악한 곳이었습니다. 얼굴에 난 상처도 얼마 전에 여자 강도 두 명에게 술병으로 머리를 두들겨 맞아 생긴 멍 자국이라고 합니다. 차가 없어 평소에는 모임의 동료들이 운전을 해주었는데 오늘은 이런 저런 일로 운전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꼭 내가 해야 나서야 할 일도 아니었고, 그분이 사는 동네도 험악한 곳이며, 솔직히 겁도 나기도 하고, 아무튼 여러 가지 생각에 머뭇거리고 주춤거리는데 문득 TV에서 본 선전문구가 생각나더군요. Just Do It!

 

신앙인이 아니더라도 오늘 복음의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바리사이파 한 사람이 자기가 짐짓 옳은 체하며 물어온 질문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사랑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니 너도 가서 그렇게 하라'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가슴을 찌릅니다. 사랑하는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어야 한다고 수 십 차례 말한 저 자신이 아직도 망설이고 주저하는 양심에 울려왔던 Just do it은 그저 선전문구가 아니라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부끄럽게도 이 비유를 통해 강도를 만나 곤경에 처한 사람의 참 이웃은 거룩한 직분의 사제도, 성전에서 봉사하는 수도자들도 아닌 원수 같은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당시 사마리아인은 유다인들이 마주치는 것조차 꺼리는 상종 못할 사람들이었음을 생각해 볼 때 내가 당한 일도 아닌데 수도자이며 사제인 제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사실 루카복음에서 강조되는 예수님의 모습은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19,10)고 말하시면서, 죄인들과 세리들과 식사를 즐겨하셨습니다. 이는 여러 사람에게 충격적으로 비춰졌지만, 예수님은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조건 없이 받아들이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은 되찾은 양과 되찾은 은전,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그중 대표적인 예 중 하나로 오늘 복음의 말씀인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율법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된다."는 말에 율법학자는 누가 이웃인지를 묻습니다. 누가 이웃이냐는 문제를 두고 유다인들 사이에 여러 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사해 근처에 살던 꿈란 공동체 수도자들은 자기네 수도자만을 이웃으로 여겼는가 하면 일부 해외 유다교인들은 온 인류를 이웃으로 간주했습니다. 유다인들의 절대다수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동포만을 이웃으로 여겼습니다.

 

이 비유에서 강도를 만나 피를 흘리고 있는 사람을 두고 사제와 레위인은 거들떠보지 않고 가던 길을 재촉합니다. 그러나 당시 유다인들에게 경멸의 대상이었던 사마리아인은 응급조치한 다음 여관에 데리고 가 그를 돌보아주도록 부탁하고, 추가 경비도 지불합니다. 이러한 선행을 베풀고도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도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지 않고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이야기를 통해 말 하고자 하는 것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것 아닐까요? 남에게 거저 받은 도움이 있다면 우리들도 거저 주면서 사는 것은 그리스도인들 뿐 아니라 모든 이들의 당연한 나눔이 아닐까요? 많은 도움을 받고 살아온 만큼 조건 없이 나를 내세우지 말고 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싶었습니다. 즉, 나를 필요로 하는 이에게 이웃이 돼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율법교사의 질문에 대해 답변하시기 전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고 물으십니다.

'율법을 어떻게 알아들었느냐'는 되묻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성서를 읽고 예수님을 안다고 해도 그분의 사랑을 살아내지 못하면 울리는 괭가리 같은 신앙의 지식만 머리에 쌓을 뿐 입니다. 그러나 지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바탕으로 한 행동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우리의 신앙도 머뭇거림이 아니라 실천하는 지혜로움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복음의 이 말씀을 어떻게 읽습니까? 이웃에 대한 사랑이 삶으로 나타납니까? 아니면 아직도 머리서 맴돌고만 있습니까?

 

교부들은 이 이야기의 사마리아인을 예수님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사마리아'는 히브리말로 목자를 뜻합니다. 예수님은 구원을 필요로 하는 우리들의 상처를 싸매주고, 치유할 수 있도록 교회라는 여관에 우리를 맡겼으며, 다시 돌아와 보살펴주겠다고 약속하고 떠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분을 믿는 우리 모두가 누군가에게 착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이웃이 돼 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실천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한 가족이며 이웃입니다.

Just Do It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김 두진(바오로)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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