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들은 보십시오.
우리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알아둡시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세상에 내려와 친히 무수한 고난을 받으시고 괴로운 가운데에서 거룩한 교회를 세우시고, 고난 중에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세상 풍속이 아무리 치고 싸운다 한들 교회를 이길 수 없습니다. 예수 승천 후 사도시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두루 무수한 어려움 중에 자라왔습니다. 이제 우리 조선에 교회가 들어온 지 오륙십여 년 동안 여러 번 박해가 일어나 교우들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또 오늘날 박해가 불길같이 일어나 여러 교우들과 나까지 잡히고, 아울러 여러분까지 환난 중에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한 몸이 되어 애통한 마음이 어찌 없겠으며, 인간적인 정[肉情] 때문에 차마 이별하기에 어려움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교회에서 말씀하시되 ‘작은 털끝이라도 주님께서 돌보신다.’ 했고, ‘모르심이 없이 돌보신다.’ 하셨습니다. 어찌 이렇듯 한 박해가 주께서 하고자 하신 일[主命] 아니면, 주님의 상[主賞]이나 주님의 벌[主罰]이 아니겠습니까. 주님의 거룩한 뜻[聖意]을 따르며 온갖 마음으로 천주 성자 예수 그리스도 대장의 편을 들어, 이미 항복받은 세속과 마귀를 공격합시다. 갈팡질팡 어쩔 줄을 모르는[遑遑] 이런 시절을 당하여, 마음을 늦추지 말고 도리어 힘을 다하고 역량을 더해서, 마치 용맹한 군사가 무기를 갖추고 전쟁터에 있음과 같이 하여, 우리도 싸워 이겨냅시다. 김대건 신부님의 마지막 옥중편지 – 교우들은 보십시오.
성 김대건 사제 순교자 대축일을 기념하면서 그분 삶을 요약해 봅니다. 성인은 1821년 8월 21일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솔뫼 마을에서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와 어머니 고 우르술라 사이에서 태났습니다. 사제가 되기 위해 아버님과 어머님을 떠나, 머나먼 나라에서 갖은 고생을 다 겪었는데 떠날 때 그의 나이 16세(1836년)였습니다. 1845년 8월 17일 25살에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은 사제성품을 받게 되는데, 우리나라 교회의 한국인 최초의 사제가 되십니다. 그리고 신부님이 되신 지 1년 1개월 만인 1846년 9월 16일에 새남터에서 26살의 젊은 나이로 순교하십니다. 하느님과 교회를 위해 예수님의 뒤를 따라 훌륭하게 순교하셨습니다. 조정에서 박식하며 외국어를 할 줄 아는 김 신부에게 많은 회유와 협박을 했으나 굳건하게 신앙의 길을 걸어가신 분이 한국의 모든 사제들의 수호성인이신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십니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1-22)
순교는 하느님께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것이며 이는 형제와 부모의 사랑을 뛰어넘는 더 큰 사랑의 표현입니다. 종교 자유의 보장을 받는 미국에서는 순교하는 것이 오히려 쉽지 않지만, 우리의 삶 안에서 순교의 정신을 살아가는 것은 중요합니다. 가장 가깝다는 가족들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안에 있는 내가 너무 커 다른 가족들이 보이지 않을 때 (스스로의 욕심) 우리는 순교의 반대 즉, 박해를 하는 사람이 됩니다.
순교를 택하는 것은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쁨을 선택하는 삶입니다. 순교를 생각하면서 순교하는 순간 더 이상 순교가 아닌 것처럼 사랑을 하면서 희생을 하는 것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닙니다. 문제는 사랑이 아닌 것을 하면서 사랑하고 산다고 믿고 살면 마음에 원망만 쌓이게 되는 법입니다. 원망이 많은 사람들의 표정은 밝지 못하고 늘 경계하고 나만 힘들게 산다고 생각하며 어두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현대의 순교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신앙적인 언어로 성서적 언어로 우리는 그것을 자기를 버리는 자기 비움의 정신이라고 말합니다. 누구든지 내 제자가 되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우리게 그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라는 것 이상의 큰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신앙인의 길은 쉽지 않습니다. 신앙인이 드러내는 삶의 기준은 세상이 아니라, 하느님과 그분의 뜻에 두고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인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면, 나는 지금 이 순간 신앙인의 한 사람으로서 하느님의 뜻에는 얼마나 충실히 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김대건성인의 삶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신앙인들이 신앙을 증거 해야 하는 세상의 환경이 되었을 때, 그때에 신앙인으로 머물려고 하는 사람들이 어떤 자세를 가져야하는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누구라도 원하지 않을 고통의 시대가 되고, 힘겨움이 우리를 찾아올 때, 우리는 과연 어떤 자세로 그 세상을 대하고 이겨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세상살이에서 해야 하는 일들은 걱정한다고 해서 더 잘 될 일들은 없습니다. 그것보다 그 시간만큼 더 많이 노력하고, 힘겨운 일을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것이 좋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내 삶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게 도와주시라는 기도를 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기도는 세상에 사는 사람이 하는 일이지만, 세상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 나의 삶을 봉헌하고 내 삶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게 해달라는 청원이고 하느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의 길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신앙인으로 산다고 하면서, 세상에 적용할 하느님의 길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 앞에 펼쳐질 현실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를 일입니다.
교우들은 보십시오!
한국성직자들의 수호자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을 지내는 오늘 하루, 사제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특히 오늘 저희 본당에서 첫 미사를 집전해 주시는 김 다니엘 신부님, 그리고 다음 주에 첫 미사를 봉헌해 주시는 베드로 신부님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제들이 그들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을 해야 하고, 훌륭한 길을 따라가야 할 일은 개인적인 문제가 되지만, 여러분이 한 마음이 되어서 기도 하신다면 사제들이 순교의 정신으로 살아가려는 사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 김 두진(바오로)신부 –